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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산문 등

구부러진 골목

가 있는 풍경 

 

 

 

       구부러진 골목

       ― 산복도로ㆍ76

                               강영환 

 

 

눈 선한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살았다

바다도 더 많이 찾아와 주고

진하게 놀다가는 별이 있는 하늘동네

갈라섰다 다시 만나는 사람 일처럼

만났다 갈라지는 것이 골목이 할 일이다

오르막은 하늘로 가는 길을 내어 놓고

곧장 가서 짠한 바닷길을 숨겨놓아

가끔은 외로워 보일 때도 있다

깃배 타는 신랑을 물 끝으로 보낸 뒤

식당일로 밤늦게 귀가하는 기장댁

길 끝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고

아랫동네에서 사업하다 부도 만난 박씨가

막다른 골목 셋방에 몸 부지해 살았다

왼 길에는 항운노조 간부를 들먹이다 힘에 겨워

스스로 생을 포기한 이씨가 남긴

어린 두 아이가 아버지도 없이 떠돌았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나가는 샛골목은

어찌 보면 질러가는 길 같으면서도

몇 번을 아프게 굽이쳐 돌고 난 뒤에야

처음 길과 만났다 늙은 골목은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일로 환해지지만

담벽에 해를 그린 아이들이 떠난 뒤

구부정해지는 줄도 모르고 허허대며

숨어 간 뒤에는 걸핏하면 나오지 않았다.  

 

읽기

 부산의 산복도로는 층층의 길이 겹을 이루고 있다. 60년대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만들어진 산복도로는 섬세하고 높은 길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사람들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아래로 탁 트인 넓은 시야가 좋아서,  산동네 달동네의 인정이 좋아서  눈 선한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살던 곳이다.  땀 흘려 일구어낸 부산의 주역들이 살고 있는 가장 낮고 막다른 길이기도 하다.

탁 트인 바다와 기다란 내륙의 지하와 평지와 고가와 산복으로 뚫려 있는 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길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산복도로처럼 결코 순탄할 수만은 없는 우리의 인생길도 오르내림의 시작과 끝이 없는 길이다

높이 올랐다고 으스댈 즈음이 곧 내려서게 되는 하강의 기점이며,  캄캄한 나락이라고 여겨진 순간이 곧 상승의 기점이 되는 길.... 지름길로만 알고 내달려온 지점에서 또다시 몇 번을 아프게 굽이쳐 돌기도 하면서 처음과 끝이 맞물려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길....

이 구불구불한 길에서  우리는 모두 아프게 갈라졌다 환하게 만났다를 반복하며,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는 세상에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리라.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