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떠나갔다
정우영
집이 떠나갔다
아버지 가신 지 딱 삼 년 만이다.
아버지 사십구재 지내고 나자,
문득 서까래가 흔들리더니
멀쩡하던 집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끙끙 앓기 삼 년,
기어이 훌훌 몸을 털고 말았다.
나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렇듯 날씨 매운 날 가시는가,
손끝 발끝이 시려왔을 뿐이다.
실은 그날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숨소리 끊기자 모두 다 빛을 잃었다.
아버지 손때 묻은 재떨이와 붓, 벼루가
삭기 시작했고 문고리까지 맥을 놓았다.
하여 사람들은 집이 떠나감을
한 세계가 지는 것이라 하는가.
두 손 모두어 경배하고
나이 마흔넷에 나는 집을 떠난다.
정우영 시집" 집이 떠나갔다"[창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