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의 모양새만을 놓고 볼라치면 영판 깻잎이요, 그 크기는 깻잎에 훨씬 못 미치나 알싸하고 맵싹한 나름의 향은 깻잎을 확실히 압도한다.
서양인들이 쉽사리 입에 댈 수 없는 우리네 음식의 으뜸은 어떠한 것일까요? 얼핏 떠오르기로는 고약한 냄새의 된장, 징글맞은 산낙지, 뜨겁게 달구는 고추장, 입냄새의 절정인 마늘 등등 들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런데, 서양인들이 감히 입에 가져 가기를 두려워 하는 최고의 한국 음식은 다름 아닌 "생깻잎"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뭐 우리야 고기 구워먹을 때 곁들이는 가장 흔한 푸성귀이기에 아무런 기꺼움이 없으나, 요놈이 서양인에게는 마치 최루가스 보다도 독하게 혀를 쏘아대서 냄새 조차도 안맡을라고 멀찌감치 밀쳐 놓기 일쑤이지요.
하기사, 들깨란 작물은 농약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해충 들이 감히 접급할 수 없을 정도의 자가 살충제를 품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들깻잎의 스펙이 이러할진대, 이 보다 몇 단계 위의 허브 강도를 지닌 방앗잎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벌써 십년 정도나 지났나요? 앞 들판으론 허멀건 메밀밭이 쫘악 깔려있고 뒤로는 들쑥날쑥한 삿갓산들로 둘러싸인 평창의 흥정계곡 초입에 자리한 찬익 선배님(41회)의 하늘민박을 가족들과 함께 다녀 왔더랩니다.
계곡엔 버들치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날 잡아잡슈하고 게으르게 배회하길래 한 냄비 건져내서 냉장고에 밀쳐놓곤, 계곡 윗쪽에 위치한 "허브나라"로 산보겸 가족들과 올랐습니다.
왠걸 내미나는 몇가지 풀때기 몇고랑 숨가놓곤 입장료를 받고 있더라구요. 울며 겨자먹기로 가족 수 대로 지불하곤, 두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이런저런 온갖 냄새를 풍기는 풀과 나무들을 둘러보았죠.
얼추 다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려는 찰라, 유독 친근하게 눈의 띄는 잎새가 보이길래 다가가 보니, 강원도에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방아풀이 단신인 저의 바지춤에 차오르도록 큰 키로 버티고 있더라구요. 마침 계곡의 피라미랑 버들치도 한 냄비 잡아논 터라 고랑을 지나치는 척 하면서 바지 호주머니로 이파리들을 한 웅큼씩 훔쳐 채워넣었죠. 그리 하여, 뜻하지 않게 그 날 저녁 우리가족은 찬익 형님과 함께 찐한 향기가 물씬 배어 나오는 민물 매운탕 축제를 열었읍죠.
"고향"이란 무엇일까요? 관념적인 고향이 아닌 감각적인 고향에는 어떠한 게 있을까를 더듬어 봅니다.
고향의 산천으로 대표되는 시각적인 고향;
소 목아지에 매달려 밤새 귀를 간지르는 소요령 소리로 상징될 법한 청각적인 고향;
인체 부산물과 섞여 뜨끈한 냄새로 피어올라 코로 흡입되는 두엄의 후각적 고향;
초봄 천변의 보드라운 버들강아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곤 쓰다듬던 촉각적 고향;
그리고 제 집집마다 독특한 냄새와 오미로 혀를 자극했던 미각적 고향 등등이 있을 터이지요.
아마도 동편 남녁에서 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그 미각적 고향의 일번지쯤에 해당할 수 있을 애기 방아풀이 저희 집 베란다에서 튼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에 양산에 갔다가 밭에서 노력봉사를 하던 중 방아풀이 소복이 자라고 있길래 요놈을 싣고 오긴 했는데, 심을 데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베란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화분의 옆뽈때기에 숨가놨더랩니다.
심은 다음날 확인하니, 마치 고엽제를 듬뿍 뒤집어쓴듯 줄기들은 휘엉쳥 늘어진채 자빠져 있고, 잎사귀들은 가을 낙엽마냥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길래, 수시로 물주고 때때로 들다보고 하면서 노심초사 몇일을 보내다 보니, 마치 남정네 양물마냥 축 늘어져 죽었다가 일순간 빨딱 살아나듯 활착에 성공을 하였음이 확인되어 제 기분은 무척이나 흐믓하답니다.
어릴 적 어른들 말씀에 나락은 논 주인의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영글어간다더니, 요 며칠간 시도때도 없이 들받아 보았더니, 그 시선도 보살핌인양 되살아난 방아가 어여뻐 이렇게 타령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합니까?
민물낚시 끊은지가 얼추 두어 해는 다 되어 가고 창고에 쳐박아 놓은 낚시대는 경시효과로 국수가닥 부러지듯 투욱 툭 부러져 나가니...
할 수 없죠, 남쪽에서 서울근방으로 시집온 방아를 후각적 고향의 원천으로 데불고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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