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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방드*

사라방드*


 

                                                                                                      허정애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를 듣다가 겨울밤, 비상구, 골수를 다 내놓은, 실어증의 길, 불안한 마침표와 쉼표들, 살기 위해 삶을 버린 시인의 붉은 시어들에 눈을 팔다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여자가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꿈의 두터운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쥐들이 들끓는 밤거리였다 하수구에는 가벼운 여자들의 몸짓처럼 김이 피어오르고, 흐린 가등 아래 목이 긴 여자가 적막의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 없는 눈으로 푸른 물 가득한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어둠에 스며 있던 적막이 발을 떼었다 얇은 먹지 같은 그림자가 번번이 구겨졌다 오래된 자학이, 강박이 푸석푸석 떨어졌다 여자의 팔이 그림자를 부여잡았다 단단히 자신을 껴안고 있었다 바닥에 끌린 여자의 외투자락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흐린 가등 아래 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계간 『예술가』 2011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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