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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천 송씨 중시조 - 송인

   송 인

 

송인은 고려 인종 서기 1125년에 덕산면 두촌리 두루지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벼슬이 삼중 대광문하 평장사에 이르렀다. 평장사는 고려시대에 가장 높은 벼슬이다.

고려 인종 임금때에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기 찬화공신에 기록되었고 그 공을 높이 치하하여 진천백을 봉하였다. 백이 되면 그 고을의 행정 사법 경제등을 맡아서 정치를 하였으며 그 지역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부유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나라에서 진천백을 봉하였기 때문에 본관을 진천으로 하였으니 진천 송씨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상산백으로 있을 때에 군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모든 행정을 공정하게 처리하였기에 군민들은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또 군내 청소년의 교육에 힘을 썼기에 어디를 가던지 글을 읽는 소리가 명랑하게 들리어 왔다. 그 뿐인가 예의를 존종하였기에 군민들은 예의바른 생활을 하였으므로 다른 군에서는 모방할래야 할수 없는 모범을 보였다. 그 후 군민들은 공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게 되었다.

묘소는 덕산면 두촌리에 있다. 옛날에는 산정면 두루지라 하였다. 좌향은 갑좌경향이다. 묘소의 변천된 모습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매우 커서 큰 산봉우리만 하였다. 조선 시대의 분묘는 신라시대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분묘는 조선시대보다 훨씬 적었다. 이렇게 묘소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묘소에 가서 보면 뒤에 아름다운 봉우리가 솟아 있으니 비봉산이라고 한다. 하늘에 살고 있다는 봉새가 날아와서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다.

그러나 진천 송씨의 시조 인 공의 묘를 쓴후 그 형국이 "매화낙지형" 즉 매화가 땅에 떨어져서 조용히 있는 모습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비봉산을 매산 매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매"는 새이름의 매가 아니오 매화의 매를 글자로 썼다.

공신이요 상산백을 지냈고, 벼슬이 평장사에 이르렀기에 나라의 명령에 의하여 봉분주위를 돌로 쌓았고, 묘갈이 있다. 분묘중에서 진천에서는 오래 된 분묘이며 환여승람에는 석총에 기록되어 있다.

진천 송씨는 공을 시조로 하여 현재 수천호가 남한각지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에 몽고병이 침입하였을 때 많은 공을 세운 송 국첨, 송 언기는 진천백의 후손이다.

* 자료 : 1 환여승람 2 진천송씨족보 3 구상산지 4 진천군지

 

자료출처 : 진천군 홈피

출처 : 진천송씨종친회
글쓴이 : 송종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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