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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無

 

 

문수사에서 바라본...

 

주은래(周恩來)의 육무(六無)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
혁명가, 총리였으며, 사회주의 운동가입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주은래는 사리사욕이 전혀 없고,
고상하고 순수하며, 도덕적인 사람이고, 또 인민해방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이라고 평을 했습니다.

 


※그 중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화는 1946년 공산당 중앙위원들이
비행기를 타고 옌안에서 충칭으로 갈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기장이 “날개가 결빙이 생겨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모두 낙하산을 매시오!"
전부 낙하산을 매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가 낙하산이 없는 것입니다.
그 때 주은래는 자신의 낙하산을 벗어 소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육무(六無)’


1.사불유회(死不留灰)
죽어서 유골을 남기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주은래가 사망한 시점은 역사의 격변기였습니다.
주은래의 유골을 그가 대학을 다니고 혁명을 시작했던
천진에서 황하입구까지 농업용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뿌려졌습니다. 유골이 없으므로,
유골을 묻은 장소나 비석도 당연히 없다고 합니다.

 


2.생이무후(生而無後)
살아서 후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3.관이무형(官而無型)
관직에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수 천 년 이래로 관직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었고,
관직이 높을수록 특수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외교, 공무를 수행할 때는 관리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보통의 백성과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그는 중국 역사이래 처음보는 평민재상이었다고 합니다.

 


4.당이무사(黨而無私)
당에 있으면서도 사사로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은래는 당내에 파벌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당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5.노이불원(勞而不怨)
고생을 해도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은래는 혁명사업과 국가건설에
많은 고생을 한 사람 입니다. 그는 해방 전에는
상해노동자궐기투쟁, 대장정, 삼대전역, 지하투쟁 등으로,
해방 후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무척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죠. 업무량으로만 계산한다면 주은래의
업무량이 당시 당원들 중에서 가장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 마디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답니다.

 


6.사불유언(死不留言)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1976년 주은래가 죽기 전에 모택동도
매일 한 번씩은 주 총리의 병세를 물어보고, 부인도 매일
병석에서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혁명원로들은 사인방에 의하여 거의 다 타도되고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엽검영(葉劍英) 원수였습니다.
엽검영은 백지를 비서들에게 주고,
혹시 주은래 총리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하나도 빼지 말고
기록해두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망 후에 다시 받아 본 백지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은래라고 어찌 남기고 싶은 말이 없었겠습니까?
아마 후일의 분란을 미리 막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주은래는 중국 인민의 가슴 속에 영원한 총리로 남아 있을 겁니다.

 

 

 

 

※인간을 평가할 때 공과 과,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지요

주은래도 모택동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아부와 아첨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에도

과보다는 공이 큰 지도자도 몇 분 있었습니다.

과만을 너무 부풀리는 것도 옳은 일이

못되고 공을 과장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글소스:http://cafe.daum.net/bdj380/IHkD/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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