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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Terroir?

1, 형상 있는 모든 物은 Terroir를 반영한다.
 
(1)Terroir란?
 
 포도나 커피나무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지리적인 요소, 기후적인 요소, 포도나 커피재배법 등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로 여기에는 토양, 강수량, 태양, 바람, 경사, 관개, 배수 등이 포함된다. 이 단어는 흙을 뜻하는 terre로부터 파생된 단어인데, 똑같은 품종이라도 각각의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와인이나 커피는 그 맛과 향이 다 다르다 출발점에서 나왔다. 그래서 똑같은 품종이라도 각각의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와인은 다 다르다는 게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여 유럽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포도품종 대신에 포도가 자란 지역을 상표명으로 할 정도로 뗴루아를 중시하는데, 근래 와인이나 커피가 한국에서도 일상화되어 가다보니 이제는 보통명사화한 용어가 되었다. 
(2) 형상 있는 모든 物은 뗴루아를 반영한다.
 
이같은 현상은 꼭 포도나무나 커피나무에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物은 생물, 무생물을 막론하고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과 토양과 기후와 풍토를 반영한다. 사람도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떼루아의 아주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옛부터 "人傑은 地靈이다"라고 하면서 하다못해 시골 군수라도 한자리 할려면 논두령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인류사의 관점에서 볼 때, 동양를 대표하는 식물이 蔘이라면 서양을 대표하는 식물은 표도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식물은 커피다. 蔘의 경우 좋은 蔘은 지하 18m까지의 정기를 흡수하면서 자란다고 하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봤던 와이너리 오너(포도농장 주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오래된 포도나무의 경우 지하 25m까지 그 뿌리를 내린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식물이 아닐 수없다.
특히 포도나무의 경우 땅이 척박하고 모래와 자갈이 섞여있는 점토질의 땅일 경우 아주 질좋은 와인이 만들어 질수 있는 포도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질 좋은 蔘의 경우도 개념은 이와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특히 포도나무의 경우 같은 포도품종이라도 어느산지産이냐에 따라서 와인의 맛과 향과 포텐셜리티가 확연히 구분되는데, 예컨대, 통상 와인과 회는 매칭 즉 마리아주(註1)가 잘 맞지 않지만, 약 1억만년 전 深海가 융기하였던 Chably지방(심해가 융기되었기 떄문에 현재도 지표와 지하에 조개껍질 등이 많이 나온다)에서 생산된 화이트와인의 경우에는 비린내가 심한 귤과 아주 궁합이 잘 맞아 비린내가 나지를 않는다.
 이는 우리나릐 풍기나 개성, 금산, 강화 등지와 같이 지력이 강한(이들 지역의 땅은 색깔이 붉고 생명력이 강하다)지역에서 질 좋은 인삼이 생산되는 이치와 같다.
 이같이 만물은 땅의 정기와 그 지역에 비취는 하늘(우주)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기에 洋의 東西를 莫論하고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과 토양과 기후와 풍토를 반영하기에, 설령 같은 품종이라고 하여도 그 藥性이 동일한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상이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어느 지역에서 채취한 山蔘이냐에 따라서 약성의 차이는 천양지차라고 생각된다. 이는 비슷한 생태조건과 성장조건을 가지고 있는 포도나무의 경우를 보면 확연해 지기 떄문이다.
2,人傑은 地靈이라 깨침도 그 땅과 배움 및 주위환경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東洋學 특히 風水學에서는 사람은 아버지 하늘에서 品性을 받고, 어머니 땅(大地)의 化育 받는다고 본다. 때문에 어떤 땅에서 살고, 조상이 어떤 땅에 體魄을 묻혔느냐가 그 사람의 현세의 길흉화복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이같은 논리의 바탕에서 옛 사람들은 "人傑은 地靈이니 하다못해 시골 군수라도 한자리 할려면 논두령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有史이래 이 땅을 오갔던 수 많은 聖賢들과 高俊逸士 및 高僧大德들의 깨침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나교(브라만교)의 根本敎理(인과법, 연기법, 윤회법)를 그대로 가져온 후 브라만교의 교리 중 단지 윤회법 중에서 카스트적 윤회제도만을 평등적윤회제도로 바꾼 후 慈悲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不可觸賤民이였던 '바이사와 슈드라에게 福音'을 선사하는 새로운 종교인佛敎를 만든 고다마싯달타가 그렇고, 히브리교 근본교리에서 유태족만 구원받는다는 選民思想을 불교의 전파방식을 그대로 원용하여 '비록 노예 등 천민이라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라는 萬民救援思想으로 바꾼 후 '자비' 대신에 '사랑'이라는 말로 신음받고 있던 노예 등 하천민들에게 福音을 선사했던 예수 크리스트가 그러하며, 사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 중에서 주위환경적 요소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었던 孔丘가 그러하다. 특히 천한 무당과 하급무관 사이에서 태어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天命과 王權神授思想'으로 집권세력인 帝王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평생을 벼슬구걸하려 다니면서 중국 전역을 떠돌아 다녔던 공구는 주위 환경의 지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비록 戰國時代에 맹가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들 敎組의 잘못된 思想를 '民本思想'으로 일부 보완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왕권신수사상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宗敎가 되지 못하고 단지 百家爭鳴 중의 하나의 流派인 儒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일찍이 맹가의 모친도 이를 알았기에 맹가를 성현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것이다(孟母三遷之敎).
 
 그들 이후 수 많은 先賢들이 나타났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그들이 태어난 주위환경과 그들이 배운 배움의 범위 내에서의 깨침이였을뿐 진정한 진리를 꺠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들면, 중국에서 나타난 禪宗의 祖師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달마를 初祖로 하는 중국 선종은 형식적으로는 불교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이는 초기불교와는 완연히 다른 종교다. 지금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남아 있는 고다마 싯달타의 초기 불교는 아함경, 아함잡경 등에 나타나 있듯이 극히 제한적임(小乘佛敎)에 반하여 不立文字와 直指人性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선종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洞察한다는 점(大乘佛敎)에서 초기 고다마의 불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의 傳法 法係를 기록한 景德傳燈錄(註2)과 碧巖錄(註3)에 나타나 있는 소위 祖師라는 고승들의 悟道頌과 解脫頌을 읽어보면 일부 몇 분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그들이 배운, 그리고 자라온 환경 이상을 깨치지 못함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 八仙들의 언행록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더 極明해진다. 이같은 사실은 중국 민간 설화적 내용(註4, 聊齋志異 등)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明白해진다. 
 
결국 인간의 깨침은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내의 깨침일뿐 그 이상도, 또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자라온 주위환경과 그가 배운 학문 이상을 깨치지 못하기에 떼루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항차, 萬物의 靈長이라는 인간마저도 이같이 심각하게 그가 자라고 배운 학문의 범위 내에서의, 또 주변 환경적 요인 등에 따른 뗴루아의 영향을 깊게 받는데, 五氣俱存하지 못하고 하나 혹은 둘의 氣로만 되어 있는 동식물들은 어떻하겠는가? 이는 不問可知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인삼이나 산삼 같은 식물들은 거의 전적으로 떼루아의 여향을 받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당연히 그 산지가, 또 그 땅이 藥性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삼을 구할려고 하시는 분들은 그 산지를 잘 살펴 구매하는게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 註1, 마리아주(marriage): 결혼이란 뜻의 불어로 음식과의 宮合을 뜻한다.
 
*註2 景德傳燈錄: 宋 景德年間에 刊行되었기에 景德傳燈錄이라 불리우는 이 책은 생몰연대 ·경력 등이 모두 미상이지만 宋나라 道源이 1006년 지은 책으로 총 30권에 이르며, 過去七佛에서 석가모니불을 거쳐 迦葉과 達磨에 이르는 인도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과, 달마 이후 법안(法眼)의 법제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밝히면서, 여러 방면에서 문헌을 찾아 대단히 상세한 승전(僧傳)을 기술하고 있어 선종(禪宗) 승전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저술이다. 권1에서 권3까지는 과거칠불로부터 인도 ·중국의 33조사를 서술했고, 권4에서 권26까지는 六祖 慧能에서 행사(行思) 아래의 제11세에 해당하는 법제(法齊)까지 5家 52世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상에서 1,727명을 기록하였는데, 이 중 998명은 어록(語錄)이 있고, 다른 729명은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전등에 관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권27에는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존경받고 있는 보지(寶誌)·선혜(善慧)·혜사(慧思)·지의(智顗)·승가(僧伽)·법운(法雲)·풍간(豐干)·한산(寒山)·습득(拾得)·포대(布袋) 등 10명의 응화현성(應化賢聖)에 관한 전기와 함께 여러 선문(禪門)에서 중요시했던 말들을 수록하면서 제방(諸方)의 잡거(雜擧) ·징(徵) ·염(拈) ·대(代) ·별(別)을, 권28에는 혜충(慧忠)에서 법인 文益까지 12명의 廣語를, 권29에는 <誌公和尙大乘讚> 10수 등 讚 ·頌 ·偈·詩를 적었으며, 제30권에는 <신심명 信心銘>을 비롯하여 중국 및 우리 나라 禪僧들의 귀감이 되었던 명(銘) ·기(記) ·잠(箴)·가(歌) 24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서가 완성되어 송나라의 眞宗에게 奉呈되었는데, 칙명에 따라 楊億 등이 刊削을 가한 후 대장경에 편입시켜 간행하였다.
 
또한, 이 책에는 우리 나라 선승들의 전등에 관한 기록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권별로 살펴보면 제9권에는 신라의 도의(道義)·혜철(慧徹)·홍척(洪陟)·무염(無染)·현욱(玄昱)·각체(覺體) 등 6명, 제10권에는 도균(道均)·품일(品日)·가지(迦智)·충언(忠彦)·대모(大茅) 등 5명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제11권에는 언충(彦忠), 제12권에는 순지(順支), 제16권에는 흠충(欽忠)·행적(行寂)·낭(朗)·청허(淸虛) 등 4명, 제17권에는 금장(金藏)·청원(淸院)·서암(瑞巖)·백암(伯巖)·대령(大嶺) 등 5명, 제19권에는 무위(無爲), 제20권에는 운주(雲住)·경유(慶猷)·혜(慧)등 3명, 제26권에는 고려의 영감(靈鑒)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법화경≫·≪선문염송≫과 함께 예로부터 불교전문강원의 최고과정인 수의과(隨意科)에서 학습되어 왔고 고려 및 조선시대의 승과(僧科) 선종선(禪宗選)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선승들은 이 책의 내용을 문답식 공개시험에서 해독해야만 대선(大選)의 법계(法階)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 나라 선원에서의 선문답도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려 중기에 혜심(慧諶)이 ≪선문염송≫을 찬술할 때 중요한 저본이 되었다.
이 책의 고간본으로는 1550년(명종 5)에 평안도의 華藏寺에서 간행하여 表訓寺로 옮긴 표훈사판 일부와, 1614년(광해군 6)에 충청남도 논산시 쌍계사에서 개판한 쌍계사판이 있는데, 쌍계사판은 언제 이장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그 완판이 해인사 寺刊板閣에 보관되어 있다.
 
* 註3, 碧巖錄: 본이름은 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佛果碧嚴破關擊節이라 하며,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宋)의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景德傳燈錄· 趙州錄·雲門錄 등의 1,700여칙의 공안 중에서 100개의 古則을 선별하여 하나하나에 게송을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송(宋)의 원오 극근(圜悟克勤)이 垂示·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이루어졌다.  禪宗, 특히 臨濟宗의 公案集의 하나로, 10권으로 되어 있고, 1125년에 완성되었다.환오의 제자에 의해 편찬·간행된 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적(典籍)으로 여긴다.
 
* 註4, 聊齋志異: 저자는 蒲松齡:1640~1715)으로 聊齋는 저자인 포송령의 서재 이름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인 '요재지이'는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怪異談)라는 뜻이다. 저자가 죽은 지 51년 만인 1766년 간행되었다. 그 후로 여러 가지 刊本)이 나왔으나, 445편이 수록된 청가정각본(靑柯亭刻本) 계통의 16권본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작자 포송령은 산동성 유천 사람으로, 자는 留仙, 호는 柳泉이며, 요재는 그의 서재의 호다. 명나라 崇禎) 3년에 나서 어려서부터 재능과 학문이 뛰어났으나 결국 진사 시험에 급제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생애는 불우했는데, 산동 벽지에서 일흔여섯으로 세상을 떠났다. 종래 86세에 죽었다는 설(魯迅) 등이 있었으나, 후스(胡適)의 고증에 의하여 76세가 정확한 것으로 되었다. 붓을 든 것은 20대였는데 죽을 때까지 쓴 모양이다. 4백 수십 편이란 많은 숫자의 수록에 관해서는 그 자신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 듣고, 들으면 곧 붓을 들어 써서 마침내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오래 계속하고 있는 중에, 사방의 친지들이 또 적어서 보내 주었다."라고.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집필한 것이며, 自序를 쓴 1679년 이후의 작품도 있다. 이 해에는 주요작품이 거의 완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작품이 신선·여우·유령·귀신·도깨비나 이상한 인간 등에 관한 이야기이며, 민간 이야기에서 취재한 것들이다. 특히 요괴와 인간과의 交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情話가 많다. 가령, 모란과 忍冬의 아름다운 꽃의 정(精)에 무한한 애정을 갖는 청년의 이야기인 〈향옥(香玉)〉이나, 어떠한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狐女의 이야기 〈拏寗〉등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는 唐代의 傳奇나 《剪燈新話》 계통의 이야기이지만, 민간의 이야기를 그대로 수록하지 않고, 특이한 이야기를 그려내려는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집필하였다. 그 결과, 교묘한 구성과 典據가 있는 용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한 간결하고 세밀한 묘사가 전개되어 있으며, 순서도 정연하다. 거기에는 괴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교착한 새로운 세계가 아름답게 전개되어, 현실을 그린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간의 참다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중국의 괴이문학 중에서 예술적 향기가 가장 높은 걸작으로 되어 있다.

주요작품 이외에 청 초의 志怪 소설 비슷한 간단한 異聞 기록도 많은데, 이들 역시 다른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중국 괴이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 각국어로도 抄譯된 바 있다.
 
여기에 짤막한 이야기를 몇 편 들어 보기로 한다.
〈九官鳥〉 어느 곳에 구관조를 기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이 새를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비가 떨어져 난처하게 되었다. 새는 "나를 임금님한테 팔으시오"라고 한다. 주인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니 "괜찮습니다. 성에서 20리 밖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세요" 한다. 그리하여 그는 새를 가지고 성안에 가서 새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 궁중에서 일을 보는 관리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임금께 말했으므로 그는 새와 함께 궁중에 불려 들어갔다. 왕은 새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데, 그는 팔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왕이 다시 이제는 새에게 물으니 새는 왕한테 있고 싶다고 한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는데, 새는 또 "열 냥만 주면 되겠지요. 많이 줄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이리하여 새는 왕과 함께 있게 되는데 왕은 기뻐서 고기를 먹인다. 고기를 다 먹고 난 새는 목욕을 하고 싶다고 하므로, 금 쟁반에 물을 가득히 채워놓고 새장을 열고 새를 꺼내 주니 새는 왕과 이야기하면서 유유히 목욕을 한 다음 홰를 치며 "임금님 안녕" 하며 크게 외치고 날아가 버렸다. 그후 사람들은 그가 새를 데리고 서안(西安)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竹靑〉 書生이 여행 도중 잠이 든 사이, 검은 옷을 입은 까마귀가 되었다. 그는 암까마귀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지만, 까마귀 처자가 그리워 다시금 까마귀가 되어 이렇게 인간과 까마귀 사이를 여러 번 오락가락한다.
〈綠衣女〉 어느 서생에게 매일 밤 찾아오는 綠衣의 여인은 허리가 유달리 가느스름하고 노래도 뛰어났다.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녹색 벌이 거미줄에 걸려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서생이 도외주자, 벌은 벼루에 담긴 먹물에 몸을 적셔 책상 위를 걸어서 '감사할 謝' 자를 쓰고 날아가 버렸다.
〈趙城의 호랑이〉 어느 마을에 한 노파가 외아들과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이 범한테 잡혀 먹혔다. 李能이란 사람이 체포장을 가지고 범을 잡으러 갔다. 범은 순순히 잡혀 왔다. 재판에서 "노파의 양자가 되라"는 판결을 받은 범은 노파를 섬겼다. 금과 비단을 물어 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노파가 죽자, 범은 노파의 무덤에서 떠날 줄 모르고 우는 것이다.
 
                                                                                     ㅡ  知  雲  先  生  ㅡ
 
 
 포도나 커피나무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지리적인 요소, 기후적인 요소, 포도나 커피재배법 등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로 여기에는 토양, 강수량, 태양, 바람, 경사, 관개, 배수 등이 포함된다. 이 단어는 흙을 뜻하는 terre로부터 파생된 단어인데, 똑같은 품종이라도 각각의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와인이나 커피는 그 맛과 향이 다 다르다 출발점에서 나왔다. 그래서 똑같은 품종이라도 각각의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와인은 다 다르다는 게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여 유럽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포도품종 대신에 포도가 자란 지역을 상표명으로 할 정도로 뗴루아를 중시하는데, 근래 와인이나 커피가 한국에서도 일상화되어 가다보니 이제는 보통명사화한 용어가 되었다. 
(2) 형상 있는 모든 物은 뗴루아를 반영한다.
 
이같은 현상은 꼭 포도나무나 커피나무에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物은 생물, 무생물을 막론하고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과 토양과 기후와 풍토를 반영한다. 사람도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떼루아의 아주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옛부터 "人傑은 地靈이다"라고 하면서 하다못해 시골 군수라도 한자리 할려면 논두령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인류사의 관점에서 볼 때, 동양를 대표하는 식물이 蔘이라면 서양을 대표하는 식물은 표도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식물은 커피다. 蔘의 경우 좋은 蔘은 지하 18m까지의 정기를 흡수하면서 자란다고 하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봤던 와이너리 오너(포도농장 주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오래된 포도나무의 경우 지하 25m까지 그 뿌리를 내린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식물이 아닐 수없다.
특히 포도나무의 경우 땅이 척박하고 모래와 자갈이 섞여있는 점토질의 땅일 경우 아주 질좋은 와인이 만들어 질수 있는 포도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질 좋은 蔘의 경우도 개념은 이와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특히 포도나무의 경우 같은 포도품종이라도 어느산지産이냐에 따라서 와인의 맛과 향과 포텐셜리티가 확연히 구분되는데, 예컨대, 통상 와인과 회는 매칭 즉 마리아주(註1)가 잘 맞지 않지만, 약 1억만년 전 深海가 융기하였던 Chably지방(심해가 융기되었기 떄문에 현재도 지표와 지하에 조개껍질 등이 많이 나온다)에서 생산된 화이트와인의 경우에는 비린내가 심한 귤과 아주 궁합이 잘 맞아 비린내가 나지를 않는다.
 이는 우리나릐 풍기나 개성, 금산, 강화 등지와 같이 지력이 강한(이들 지역의 땅은 색깔이 붉고 생명력이 강하다)지역에서 질 좋은 인삼이 생산되는 이치와 같다.
 이같이 만물은 땅의 정기와 그 지역에 비취는 하늘(우주)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기에 洋의 東西를 莫論하고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과 토양과 기후와 풍토를 반영하기에, 설령 같은 품종이라고 하여도 그 藥性이 동일한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상이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어느 지역에서 채취한 山蔘이냐에 따라서 약성의 차이는 천양지차라고 생각된다. 이는 비슷한 생태조건과 성장조건을 가지고 있는 포도나무의 경우를 보면 확연해 지기 떄문이다.
2,人傑은 地靈이라 깨침도 그 땅과 배움 및 주위환경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東洋學 특히 風水學에서는 사람은 아버지 하늘에서 品性을 받고, 어머니 땅(大地)의 化育 받는다고 본다. 때문에 어떤 땅에서 살고, 조상이 어떤 땅에 體魄을 묻혔느냐가 그 사람의 현세의 길흉화복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이같은 논리의 바탕에서 옛 사람들은 "人傑은 地靈이니 하다못해 시골 군수라도 한자리 할려면 논두령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有史이래 이 땅을 오갔던 수 많은 聖賢들과 高俊逸士 및 高僧大德들의 깨침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나교(브라만교)의 根本敎理(인과법, 연기법, 윤회법)를 그대로 가져온 후 브라만교의 교리 중 단지 윤회법 중에서 카스트적 윤회제도만을 평등적윤회제도로 바꾼 후 慈悲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不可觸賤民이였던 '바이사와 슈드라에게 福音'을 선사하는 새로운 종교인佛敎를 만든 고다마싯달타가 그렇고, 히브리교 근본교리에서 유태족만 구원받는다는 選民思想을 불교의 전파방식을 그대로 원용하여 '비록 노예 등 천민이라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라는 萬民救援思想으로 바꾼 후 '자비' 대신에 '사랑'이라는 말로 신음받고 있던 노예 등 하천민들에게 福音을 선사했던 예수 크리스트가 그러하며, 사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 중에서 주위환경적 요소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었던 孔丘가 그러하다. 특히 천한 무당과 하급무관 사이에서 태어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天命과 王權神授思想'으로 집권세력인 帝王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평생을 벼슬구걸하려 다니면서 중국 전역을 떠돌아 다녔던 공구는 주위 환경의 지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비록 戰國時代에 맹가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들 敎組의 잘못된 思想를 '民本思想'으로 일부 보완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왕권신수사상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宗敎가 되지 못하고 단지 百家爭鳴 중의 하나의 流派인 儒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일찍이 맹가의 모친도 이를 알았기에 맹가를 성현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것이다(孟母三遷之敎).
 
 그들 이후 수 많은 先賢들이 나타났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그들이 태어난 주위환경과 그들이 배운 배움의 범위 내에서의 깨침이였을뿐 진정한 진리를 꺠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들면, 중국에서 나타난 禪宗의 祖師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달마를 初祖로 하는 중국 선종은 형식적으로는 불교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이는 초기불교와는 완연히 다른 종교다. 지금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남아 있는 고다마 싯달타의 초기 불교는 아함경, 아함잡경 등에 나타나 있듯이 극히 제한적임(小乘佛敎)에 반하여 不立文字와 直指人性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선종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洞察한다는 점(大乘佛敎)에서 초기 고다마의 불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의 傳法 法係를 기록한 景德傳燈錄(註2)과 碧巖錄(註3)에 나타나 있는 소위 祖師라는 고승들의 悟道頌과 解脫頌을 읽어보면 일부 몇 분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그들이 배운, 그리고 자라온 환경 이상을 깨치지 못함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 八仙들의 언행록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더 極明해진다. 이같은 사실은 중국 민간 설화적 내용(註4, 聊齋志異 등)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明白해진다. 
 
결국 인간의 깨침은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내의 깨침일뿐 그 이상도, 또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자라온 주위환경과 그가 배운 학문 이상을 깨치지 못하기에 떼루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항차, 萬物의 靈長이라는 인간마저도 이같이 심각하게 그가 자라고 배운 학문의 범위 내에서의, 또 주변 환경적 요인 등에 따른 뗴루아의 영향을 깊게 받는데, 五氣俱存하지 못하고 하나 혹은 둘의 氣로만 되어 있는 동식물들은 어떻하겠는가? 이는 不問可知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인삼이나 산삼 같은 식물들은 거의 전적으로 떼루아의 여향을 받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당연히 그 산지가, 또 그 땅이 藥性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삼을 구할려고 하시는 분들은 그 산지를 잘 살펴 구매하는게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 註1, 마리아주(marriage): 결혼이란 뜻의 불어로 음식과의 宮合을 뜻한다.
 
*註2 景德傳燈錄: 宋 景德年間에 刊行되었기에 景德傳燈錄이라 불리우는 이 책은 생몰연대 ·경력 등이 모두 미상이지만 宋나라 道源이 1006년 지은 책으로 총 30권에 이르며, 過去七佛에서 석가모니불을 거쳐 迦葉과 達磨에 이르는 인도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과, 달마 이후 법안(法眼)의 법제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밝히면서, 여러 방면에서 문헌을 찾아 대단히 상세한 승전(僧傳)을 기술하고 있어 선종(禪宗) 승전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저술이다. 권1에서 권3까지는 과거칠불로부터 인도 ·중국의 33조사를 서술했고, 권4에서 권26까지는 六祖 慧能에서 행사(行思) 아래의 제11세에 해당하는 법제(法齊)까지 5家 52世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상에서 1,727명을 기록하였는데, 이 중 998명은 어록(語錄)이 있고, 다른 729명은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전등에 관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권27에는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존경받고 있는 보지(寶誌)·선혜(善慧)·혜사(慧思)·지의(智顗)·승가(僧伽)·법운(法雲)·풍간(豐干)·한산(寒山)·습득(拾得)·포대(布袋) 등 10명의 응화현성(應化賢聖)에 관한 전기와 함께 여러 선문(禪門)에서 중요시했던 말들을 수록하면서 제방(諸方)의 잡거(雜擧) ·징(徵) ·염(拈) ·대(代) ·별(別)을, 권28에는 혜충(慧忠)에서 법인 文益까지 12명의 廣語를, 권29에는 <誌公和尙大乘讚> 10수 등 讚 ·頌 ·偈·詩를 적었으며, 제30권에는 <신심명 信心銘>을 비롯하여 중국 및 우리 나라 禪僧들의 귀감이 되었던 명(銘) ·기(記) ·잠(箴)·가(歌) 24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서가 완성되어 송나라의 眞宗에게 奉呈되었는데, 칙명에 따라 楊億 등이 刊削을 가한 후 대장경에 편입시켜 간행하였다.
 
또한, 이 책에는 우리 나라 선승들의 전등에 관한 기록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권별로 살펴보면 제9권에는 신라의 도의(道義)·혜철(慧徹)·홍척(洪陟)·무염(無染)·현욱(玄昱)·각체(覺體) 등 6명, 제10권에는 도균(道均)·품일(品日)·가지(迦智)·충언(忠彦)·대모(大茅) 등 5명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제11권에는 언충(彦忠), 제12권에는 순지(順支), 제16권에는 흠충(欽忠)·행적(行寂)·낭(朗)·청허(淸虛) 등 4명, 제17권에는 금장(金藏)·청원(淸院)·서암(瑞巖)·백암(伯巖)·대령(大嶺) 등 5명, 제19권에는 무위(無爲), 제20권에는 운주(雲住)·경유(慶猷)·혜(慧)등 3명, 제26권에는 고려의 영감(靈鑒)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법화경≫·≪선문염송≫과 함께 예로부터 불교전문강원의 최고과정인 수의과(隨意科)에서 학습되어 왔고 고려 및 조선시대의 승과(僧科) 선종선(禪宗選)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선승들은 이 책의 내용을 문답식 공개시험에서 해독해야만 대선(大選)의 법계(法階)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 나라 선원에서의 선문답도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려 중기에 혜심(慧諶)이 ≪선문염송≫을 찬술할 때 중요한 저본이 되었다.
이 책의 고간본으로는 1550년(명종 5)에 평안도의 華藏寺에서 간행하여 表訓寺로 옮긴 표훈사판 일부와, 1614년(광해군 6)에 충청남도 논산시 쌍계사에서 개판한 쌍계사판이 있는데, 쌍계사판은 언제 이장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그 완판이 해인사 寺刊板閣에 보관되어 있다.
 
* 註3, 碧巖錄: 본이름은 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佛果碧嚴破關擊節이라 하며,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宋)의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景德傳燈錄· 趙州錄·雲門錄 등의 1,700여칙의 공안 중에서 100개의 古則을 선별하여 하나하나에 게송을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송(宋)의 원오 극근(圜悟克勤)이 垂示·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이루어졌다.  禪宗, 특히 臨濟宗의 公案集의 하나로, 10권으로 되어 있고, 1125년에 완성되었다.환오의 제자에 의해 편찬·간행된 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적(典籍)으로 여긴다.
 
* 註4, 聊齋志異: 저자는 蒲松齡:1640~1715)으로 聊齋는 저자인 포송령의 서재 이름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인 '요재지이'는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怪異談)라는 뜻이다. 저자가 죽은 지 51년 만인 1766년 간행되었다. 그 후로 여러 가지 刊本)이 나왔으나, 445편이 수록된 청가정각본(靑柯亭刻本) 계통의 16권본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작자 포송령은 산동성 유천 사람으로, 자는 留仙, 호는 柳泉이며, 요재는 그의 서재의 호다. 명나라 崇禎) 3년에 나서 어려서부터 재능과 학문이 뛰어났으나 결국 진사 시험에 급제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생애는 불우했는데, 산동 벽지에서 일흔여섯으로 세상을 떠났다. 종래 86세에 죽었다는 설(魯迅) 등이 있었으나, 후스(胡適)의 고증에 의하여 76세가 정확한 것으로 되었다. 붓을 든 것은 20대였는데 죽을 때까지 쓴 모양이다. 4백 수십 편이란 많은 숫자의 수록에 관해서는 그 자신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 듣고, 들으면 곧 붓을 들어 써서 마침내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오래 계속하고 있는 중에, 사방의 친지들이 또 적어서 보내 주었다."라고.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집필한 것이며, 自序를 쓴 1679년 이후의 작품도 있다. 이 해에는 주요작품이 거의 완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작품이 신선·여우·유령·귀신·도깨비나 이상한 인간 등에 관한 이야기이며, 민간 이야기에서 취재한 것들이다. 특히 요괴와 인간과의 交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情話가 많다. 가령, 모란과 忍冬의 아름다운 꽃의 정(精)에 무한한 애정을 갖는 청년의 이야기인 〈향옥(香玉)〉이나, 어떠한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狐女의 이야기 〈拏寗〉등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는 唐代의 傳奇나 《剪燈新話》 계통의 이야기이지만, 민간의 이야기를 그대로 수록하지 않고, 특이한 이야기를 그려내려는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집필하였다. 그 결과, 교묘한 구성과 典據가 있는 용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한 간결하고 세밀한 묘사가 전개되어 있으며, 순서도 정연하다. 거기에는 괴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교착한 새로운 세계가 아름답게 전개되어, 현실을 그린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간의 참다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중국의 괴이문학 중에서 예술적 향기가 가장 높은 걸작으로 되어 있다.

주요작품 이외에 청 초의 志怪 소설 비슷한 간단한 異聞 기록도 많은데, 이들 역시 다른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중국 괴이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 각국어로도 抄譯된 바 있다.
 
여기에 짤막한 이야기를 몇 편 들어 보기로 한다.
〈九官鳥〉 어느 곳에 구관조를 기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이 새를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비가 떨어져 난처하게 되었다. 새는 "나를 임금님한테 팔으시오"라고 한다. 주인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니 "괜찮습니다. 성에서 20리 밖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세요" 한다. 그리하여 그는 새를 가지고 성안에 가서 새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 궁중에서 일을 보는 관리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임금께 말했으므로 그는 새와 함께 궁중에 불려 들어갔다. 왕은 새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데, 그는 팔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왕이 다시 이제는 새에게 물으니 새는 왕한테 있고 싶다고 한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는데, 새는 또 "열 냥만 주면 되겠지요. 많이 줄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이리하여 새는 왕과 함께 있게 되는데 왕은 기뻐서 고기를 먹인다. 고기를 다 먹고 난 새는 목욕을 하고 싶다고 하므로, 금 쟁반에 물을 가득히 채워놓고 새장을 열고 새를 꺼내 주니 새는 왕과 이야기하면서 유유히 목욕을 한 다음 홰를 치며 "임금님 안녕" 하며 크게 외치고 날아가 버렸다. 그후 사람들은 그가 새를 데리고 서안(西安)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竹靑〉 書生이 여행 도중 잠이 든 사이, 검은 옷을 입은 까마귀가 되었다. 그는 암까마귀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지만, 까마귀 처자가 그리워 다시금 까마귀가 되어 이렇게 인간과 까마귀 사이를 여러 번 오락가락한다.
〈綠衣女〉 어느 서생에게 매일 밤 찾아오는 綠衣의 여인은 허리가 유달리 가느스름하고 노래도 뛰어났다.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녹색 벌이 거미줄에 걸려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서생이 도외주자, 벌은 벼루에 담긴 먹물에 몸을 적셔 책상 위를 걸어서 '감사할 謝' 자를 쓰고 날아가 버렸다.
〈趙城의 호랑이〉 어느 마을에 한 노파가 외아들과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이 범한테 잡혀 먹혔다. 李能이란 사람이 체포장을 가지고 범을 잡으러 갔다. 범은 순순히 잡혀 왔다. 재판에서 "노파의 양자가 되라"는 판결을 받은 범은 노파를 섬겼다. 금과 비단을 물어 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노파가 죽자, 범은 노파의 무덤에서 떠날 줄 모르고 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