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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哀溺文/ 애익문

哀溺文/ 애익문

 

영주(永州) 도시에 수영 잘하는 백성 하나가 폭우가 심히 내려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의 호남성(湖南省)의 상강(湘水)에서 배를 탔다. 중간쯤에서 배가 부서져 모두 수영을 해야 했다. 그 사람만 힘을 다하는데도 머잖은 상거의 물을 건너지 못하고 뒤처지자, 헤엄치던 사람들이 평소에 남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웬 일인가? 물었다. “내 허리에 1천 양의 돈 꾸러미가 무거워서 요!” 사람들이 다 건너왔으나 아직도 그는 허우적거려서, “돈을 끌러 버려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죽으면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인가, 버려라!” 고개를 저으며 그는 끝내 그 천 양과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그 큰 돈을 갖지 않았더라면 이 위인이 익사 했겠는가(若是 得不有大貨之 溺大氓者乎)? 내가 그의 익사를 슬퍼하여 이를 지었다(于是作‘哀溺).”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수필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슬퍼함(哀溺文序)’이란 짧은 글을 내가 번역한 것이다. 유주 자사(柳州刺史)를 지내서 흔히 유유주(柳柳州)라고도 하며 조상이 지금의 산서성(山西省)인 옛 하동(河東)에 살아서 그를 하동선생(河東先生)이라고 도 부르는데,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 운동으로 뛰어난 문장가로 남아있다. 우리에게도 종종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심지어 위험한 지경에 이를지라도 버리지 못하여 낭패를 당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때 두고 온 것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 경고했지만, 죽는다고 주의를 들었지만 차마 한번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롯의 부인은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창세기의 얘기도 그런 경우다. 무엇이 내 허리에 감겨서 버리지 못할 정도로 아까운가?

조선 영조와 정조 때 사람이 낸 무명자집(無名子集)에도 물에 빠져 죽은 에피소드가 소개되었다. 한 마을 앞 강물이 초 겨울에 조금 얼자 나룻배 운항이 어려웠다. 이에 뱃사람이 애써서 얼음을 깨고 배를 부리자 사람들이 좋아했고, 이에 사공은 1인 당 1전 또는 2전씩 받았다. 모두가 기꺼이 건너는데, 한 약삭빠른 사람은 내가 조심해 딛고 건너면 괜찮을 것이라며 그 1, 2전 아끼려고 얇은 얼음을 밟고 건너다가 그만 중도에서 빠져 죽었더라는 것이다. 돈 1전 아끼려다 목숨을 통째로 지불했으니 천 양을 허리에 차고 익사 한 사람보다는 덜 억울할까? 큰 돈이 아깝지만 푼 돈 아끼다가 도 목숨 잃는 수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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