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유고 북 리뷰/ A Book Review
오늘 막 ‘만회유고(晩悔遺稿)’라는 한 권의 번역서가 출간되었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지난 몇 달에 한문(漢文) 문집 하나를 직접 번역하고 또 편집 간행했다, 물론 의뢰 받은 일이다. 대한제국 말 궁내부 주사(宮內府 主事)였으나 소위 한일합방에 관직을 버리고 귀향해 여생을 항일의 노력과 기울어진 유학(儒學)의 전통을 끝까지 실행하였던 한 선비의 우러난 정신이다. 언양김씨(彦陽金氏) 만회 김영구(晩悔 金榮九/ 1863-1949)의 한문 유고의 국역으로, 나라를 잃고 스승 면암(勉庵 崔益鉉) 선생과 항일 운동에 숨어서 활동하였고, 고향에 정자를 짓고 전국의 유림(儒林)들과 교유를 통한 시회(詩會) 등에서 지은 한시(漢詩)와 수상(隨想) 등으로 구성되었다.
고종(高宗)의 어진(御眞)이며 우국지사 영정도 많이 그렸던 유명한 채용신(蔡龍臣/ 1850-1841)이 그린 김영구의 초상화가 전주국립박물관에 기증 되어 있어서 다운로드 받아 이 문집에 넣고, 면암이 보낸 간찰문도 하나 부록에 실었으니 실감이 더한다. 그의 초상화가 보여주듯 원칙적인 이미지가 글 속에서도 느껴진다. 갑오경장 뒤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에는 부모에게 받은 귀한 머리를 자를 수 없다며 자녀와 후손들이 세상에 물이 들 가봐 가솔(家率)해 계룡산 속에 이사를 가서 여생을 살겠다고 시도하였을 정도이니 유학(儒學)의 전통을 고수했던 인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더욱더 전통 윤리가 무너지는 판에 그의 고고한 정신이 우리에게 무슨 깨우침을 줄까 생각하게 한다.
끝까지 공부하는 만학(晩學)의 한 귀감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가업(家業)을 세우기 위해선 젊은 날에 힘을 다했으니, 김제에서 천석꾼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교의 전통대로 미쳐 석물(石物)을 준비 못한 선영(先塋)에는 빗 돌을 갖추어 세웠고, 위토를 장만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으며, 주요 선조의 몇 재실까지 자비를 바쳐 건립하였다. 그리고는 일찍이 못다 이룬 학문도 뒤늦게 시작하였는데, 경서(經書)와 서책에 많은 돈을 들여 갖춰 서재를 만들고 생애 마지막까지 읽고 또 글을 지었으니 그의 당호(堂號)를 일컬어 만회당(晩悔堂)이라 한 것이다. 우리가 늙었다고 못할 게 아니라 만회유고를 보면서 공자처럼 일생 배우기를 기뻐하여 밥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가 있었음을 우리가 배울 수 있다. 아름다운 금강산 기문(記文) 등은 실감이 나게 하고,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을 거울 삼아 집안의 후손들이 대대로 잘 살 수 있는 기틀의 의장가훈(義庄家訓) 뜻과 그 방법은 지금도 우리가 배울 가치가 있을 것이다. 혹 관심 있는 페북 친구들이 이를 꼭 읽고 싶다면, 다만 몇 권에 한하여 송금만 착불(着拂)로 부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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