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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FILO Motto / 先進後出

FILO Motto/ 先進後出


미국에서 사용된 모토(motto)였다. 삶의 지표나 집단의 신조(信條), 사회 조직의 슬로건(slogan)으로 삼는 표어(標語)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도록 만든 표현의 강렬한 메시지이다. ‘맨 먼저 들어가고, 맨 나중에 나오자! (First in, last out!) 약자로 흔히 FILO라고도 쓴다. 전쟁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솔선하고 헌신하는 선행적 정신을 고취하는 표현인 것이다. 조지아(Georgia) 주에 있는 제1기갑 사단의 척후병(斥候兵) 훈련 학교에서 일찍이 그 모토를 내걸었다고 한다. 최전선에 가장 빨리 침투해서 전투에 임하도록 적정(賊情)을 간파하여 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정예부대의 정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험한 속에서도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용감하게 가장 먼저 뛰어들고, 또 상황의 끝까지를 살피는 헌신의 자원을 고취하는 말이다.
그런 정신에 정 반대 되는 것은 제일 늦게 들어가서 제일 먼저 나온다는 게 된다. 위험한 상황이 터지면 뒤에서 조정만 하고 있다가 위험이 정리되고 나서야 안전하게 들어갔다가는 혹 위기가 재발 할까 염려하면서 재빨리 현장을 제일 먼저 빠져나오는 경우가 후입 선출(後入先出)이 된다. 마치 가장 높은 계급의 사람이 병사들만 위험한 곳에 내보내서 싸우고 진압하도록 뒤의 안전한 곳에서 지휘만 하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확보될 때 나타났다가, 제일 먼저 현장을 빠져나오는 현상 말이다. 진정한 지휘관이며 지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솔선수범하여 제일 먼저 앞장서 병사를 지휘하는 것이 모범적인 전형이 될 것이다. 물론 구조상 선입후출의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먼저 타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내릴 때면 맨 나중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직장에 맨 나중 들어온 신입이 회사에서 해고될 때는 맨 먼저 잘리는 것도 그렇다, 선참자는 일찍 들어와 고참자가 되었으니 맨 나중에 나간다.
그러나 여기 자원의 모토로 삼는 선진 후출(先進後出)은 사물의 이치에 따른 순리 현상이 아니라 솔선의 희생정신이므로 이기적 욕망을 초월하는 고결한 봉사 정신의 다른 차원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가치 추구인 것이다. 미군의 그 모토가 미국 소방서에서도 사용되어왔고, 우리 소방서에서도 이 모토를 내걸었으며, 소방의 날에 이를 언급하는 말을 듣는다. 화재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불에 타는 무서운 불길 속으로 소화전을 들고 제일 빨리 뛰어드는 것이 소방대원이다. 그 위기 속에서 오로지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불길이 잡힌 뒤까지 잔불도 다 잡기 위해 남아 있다가 맨 나중에 나오는 위대한 모습이 자원의 선진 후출이다. 그야말로 First in, last out!이다. 그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범중엄(范仲淹/ 989-1052)은 “먼저 천하의 염려를 내가 걱정하고, 온 세상이 다 즐거워한 뒤에 내가 기쁨을 누리겠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정신이 진정한 지도자의 솔선하는 태도이다. 좋은 것은 자기가 제일 먼저 갖고 위험한 것은 맨 나중에 접하려 드는 극단적 이기주의 현실에서도 꿋꿋이 소방대원들처럼 위험에도 선입 후출 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어서 살만한 세상이 되고 있지 아니한 가. 지도자가 섬기는 종이 되는(마20:27) 사회가 천국이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