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of Fruition/ 결실의 계절
끝없이 푸른 하늘 아래 따스한 가을볕은 더 없이 풍성하다. 진주 이슬 영롱하게 빛날 때 가을 들판엔 벼가 노랗게 영글고, 고향 뒷산엔 밤톨이 떨어지면 대추도 빨갛게 익어갔다. 가을은 모두가 숙성하는 결실의 계절이다. 우리 눈에도 익고, 손에도 익으며, 몸에도 익어서 온통 완숙해진다. 통통하게 감이 익어가는 감나무 밑 논두렁엔 손에 익은 낫 질로 풀이 착착 베어져 넘어가고, 주부의 익숙한 칼질엔 추양(秋陽)에 말려 갈무리할 애호박과 무가 한 결 같이 살캉살캉 썰어진다. 일이 몸에 익은 사람은 이토록 쉽게 진행하고 힘을 덜 들이고도 훌륭한 작업 능률을 올리지 않던가. 열매가 익듯이 일이 익어서 그만큼 원숙(圓熟)해졌기 때문이다. 과일의 성장 과정처럼 일도 오랜 동안에 손발에 익고 몸에 배도록 익숙해지면 전문가(professional)로 발전하고, 베테랑(veteran)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출내기는 그런 장인(匠人)을 따라갈 수가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분야의 일에 어느 정도의 유능한 직업인이 되게 마련인데, 나의 가을은 얼마큼 익어가고 있는가?
한석봉의 이야기, 한호(石峯 韓濩/ 1543-1605)의 에피소드엔 우리가 다 익숙하다. 절에 들어가 10년 공부를 하고서 거의 완성했다고 여긴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솔선하여 불을 끄고는 일렀다, “내가 가래떡을 써는 동안 너는 글씨를 써라!” 과연 어머니가 썬 떡은 일정한 두께로 완벽한 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석봉의 글씨는 크기가 다르고 삐뚤어졌다. 그는 다시 절간으로 돌아가 정진하고 익힌 끝에, 마침내 조선의 명필(名筆)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솜씨가 익는 것은 아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노력에 의한 공든 훈련이 있어야 진실로 몸과 정신에 배어서 완숙 해지는 것이다. 떡을 썰든지 쟁기로 밭을 가는 일도 그냥 기술이 쌓이는 게 아니라 공을 들인 노력에 의하여 단련되어질 때, 그 성숙도가 익어갈 수가 있다.
풋 과일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무르익어 완숙(完熟)하듯, 풋내기도 온 여름 내 일을 하고 또 하는 중에 숙련(熟練)의 솜씨가 배어서 멋지게 일을 마무리하고 훌륭한 성취를 이루게 되니 시간과 연륜이 쌓이면서 성숙도(成熟度)도 그 노력만큼 쌓여가기 마련이다. 지난날의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젊어서부터 길쌈 하는 솜씨가 손에 배어서 착착 감아 넘어가고 베틀에 앉으면 찰카닥 찰카닥 베 짜는 소리가 고르게 리듬을 맞추어 북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한 올 한 올의 베를 짰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은 소를 몰아 쟁기를 잡으면 기계처럼 이랑을 타고 논 밭을 갈아엎고 자로 잰 듯 간격에 따라 고른 이랑의 물결을 예술처럼 만들어가지 않던가. 사과가 붉게 익고 감이 노랗게 익는 이 가을에 나의 솜씨에는 무엇으로 익어 가는가? 내가 글을 지을 때 고치에서 끊임없이 깁이 술술 풀려 나오듯 문장이 흘러 나오려 나, 막히고 끊어지는가? 이 좋은 가을 날씨에 오곡과 과일이 익듯이 내 재주와 내 일도 더욱 충실하게 익게 해야 하지 않을까? 몸에 배어서 불을 끄고도 한결 같을 수 있게 말이다, 더욱 익숙하게. ‘연습만이 완벽하게 만든다(Practice Makes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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