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衣還鄕/ 금의환향
추석에 고향 가는 길이 비록 고속도로에서 정체 되더라도 기꺼이 들 견디면서 간다. 정감(情感)이 가득한 민속의 순례 길인 까닭이다. 그 심층적 본심은 옛날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정서 때문일 것도 같다. 그 말의 근원은 2천 년 전 항우(項羽/ 232-202 BC) 장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동양에서 역사 책의 전범(典範)으로 삼아온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項羽本紀)에 전한다. 20대의 장수 항우는 승승장구(乘勝長驅), 수많은 전쟁에서 한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이 마침내 진시황(秦始皇)이 찬란하게 건설한 진(秦) 제국의 수도 함양(咸陽)에 이르렀다. 엄청난 진시황의 보물 창고를 독차지하고, 수많은 미녀들이 다 그의 차지였으니 그 보석과 미녀들을 끼고서 그는 자기의 성공을 빨리 고향에 가서 자랑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부귀를 성취하고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수놓은 옷을 차려 입고 밤중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했다. 그의 이 말은 오랫동안 속담이 되었고, 수놓은 아름다운 옷이 비단옷으로 변했으니 금의야행(錦衣夜行)이 되었다. 어쩌면 2천 년 전에는 실크(silk)보다 수를 놓은 옷이 가장 고귀했을 수도 있으니 의수야행(衣繡夜行)이라 했나 보다. 그런데 후엔 비단인 실크가 최고의 옷이었으니 그렇게 말이 바뀌었으나 그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다가 조선에서는 과거 급제를 하면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금의환향은 최고 영예의 출세를 뜻하게 되었다. 그보다 더 영광스러울 수가 없었으니 급제가 성공의 첩경(捷徑)이었던 까닭이다. 그때는 벼슬을 해야만 출세의 길이 열렸기에 운명을 걸고 공부를 했었다. 그 후에는 과거 급제만 아니라 돈을 많이 벌고 귀하게 되는 성공을 아우르는 말이 된 것이다. 훨씬 다양해진 현대사회에서는 금의환향의 현상도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에서도 주식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이번 추석 귀향이 금의환향이 된다.
비단옷을 입고 밤중에 돌아다녀 봐야 누가 봐주겠는가? 아무런 자랑거리도 못되니 쓸모없는 짓이라는 조소에 가까운 의미다. 성공이 자신의 내면에 만족만이 아니라, 남에게 자랑해야만 그 가치가 크게 빛난다고 여긴 것이다. 성공을 못하고, 돈을 못 벌어 결혼을 못하고, 그래서 손 자녀를 시골의 부모님께 안겨드리지 못하면 귀향 길이 오히려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많은 보석과 미녀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뿔싸!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는 바람에 다 된 성공을 유방(劉邦)에게 그만 빼앗기고 말았으니, 30 청춘에 천하 정상에 오르려는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될 줄이야! 고향 가는 강을 건너지도 못한 채 자결하고 말았으니 금의환향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비단옷만 입어야, 성공을 해야만 진실로 금의환향이겠는가? 가슴 가득한 사랑의 정(情)을 안고 고향에 가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내면의 금의환향이겠건만. 외화내허(外華內虛)로 자랑하려면 고향 강 나루도 건너기 전에 뜬 구름처럼 사라지는 부생낭사(浮生浪死)가 될지도 모른다. 겉의 비단옷은 못 입어도, 가슴 가득한 속의 진솔한 정(情)의 선물을 가득 안고 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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