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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傲霜凌雪/ 불굴의 정신

傲霜凌雪/ 불굴의 정신


오늘이 상강(霜降), 이번 서리는 예년보다 좀 빨리 내려서 농가(農家)를 놀라게 했다고 고향 친구가 말했다. 막바지의 애호박 미처 못 따고 토란도 다 거두기도 전에 삶아 놓은 듯 된 서리가 내렸다 네. 대개는 예고편으로 무서리가 내리는데, 단번에 된 서리인 숙상(肅霜)인 모양이다. 시경(詩經 豳風)에도 음력 9월의 된 서리[九月肅霜]라 했으니, 이때는 만물이 수축하는 때로 가을 기운이 초목을 말려 죽인다는 숙살지기(肅殺之氣)의 계절은 어김없이 오는 법이다. 그 엄격함은 음기(陰氣)의 강세로 만물을 움츠리게 하는 까닭이니 공기가 차가워져 이슬이 서리가 되고 하얗게 지표(地表)를 덮어 서리가 내린다. 이때를 맞추는 건 기러기들 남쪽으로 떠나가는 소식이라서, 그들을 ‘서리의 소식’ 곧 상신(霜信)이라 부른다.
찬란하던 온갖 꽃들이 사라지고 왕성하던 숲에도 단풍으로 연해질 때이지만, 오로지 국화(菊花)만이 서리를 버티므로 수많은 역대의 시인들은 국화의 절개를 읊었으니 서리 밑에도 꿋꿋한 영웅이니 상하걸(霜下傑)이라 했다. 그래서 상풍고절(霜風高節)로 서리 내린 바람에라도 국화는 버티어 높은 절개를 지키므로 온갖 난관에 처하여도 결코 굽히지 않는 절개를 표상하는 꽃이다. 항일(抗日)에 끝내 죽도록 맞섰던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의 ‘국화(菊花)’ 시 오언절구를 감상하면 고결한 처사(處士)의 단정한 가을 꽃,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 기풍이 선비 정신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예쁜 빛깔에다 향기도 맑아 佳色兼淸馥
단정함 선비가 기를 만하고 端宜處士培
봄꽃과 함께 하기 부끄러워 羞同桃李節
가을 구월을 기다렸다 피네 遲向九秋開
또한 오상투설(傲霜鬪雪), 오상기설(傲霜欺雪)의 매화(梅花)를 셀 수 없이 또 찬양한 것은 눈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절조(節操)를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 서리 견디는 품위를 오상기상이라 찬 서리, 눈 서리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기백(氣魄)의 정신에 대한 비유이다. 한랭의 겨울로 가는 길목에는 서릿발이 차갑다. 그 풍상(風霜), 바람 서리 아랑곳하지 않는 변함없는 절개의 의지를 논할 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외부의 악조건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모진 역경(逆境)의 온갖 고초에도 꿋꿋하게 견디는 강한 결의의 굳센 투지를 그림처럼 그린 이미지가 오상능상(傲霜凌雪), 그 불굴의 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