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리모컨을 들고 TV 채널을 뒤적거리던 중. 오랜만에 KBS 낭독의 발견을 시청하게 됐어요.
정말 좋아하는 프로였는데, 요 몇 달 뜸했죠. 시간 없다는 핑계로 TV와 멀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한강 선유도 공원에서 성우 배한성 씨가 유치환의 행복을 읽어주시더라고요.
가을의 쓸쓸함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초랑초랑 부는 강 바람에, 은은한 시 운율. 그리고 성우의 맑고 온화한 목소리까지.
잘 해보겠노라고 바쁘게 지내보겠노라고 다짐은 늘상 하지만.
큰 걸 얻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하루하루가 허망한 요즘인데.
이 시를 읽어보니, 삶 속에 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은 반성이 들더라고요.
나에게 말 거는 법을 잃어버린 지 너무 오래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뭔가 쫓기듯 살면서도, 행복하질 않고. 사랑할 대상도 놓치고, 그러면서도 또 나를 바라보지 못 하고.
공부하느라 바쁜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계절이 지나가는 것, 내 삶의 목표.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신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의 공복이 되고, 내가 바로서고 사회가 바로서게 되는 걸 꿈꾼다면.
나도 바라볼 줄 알고, 우리 주변과도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네요.
유치환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각자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편지를 쓰고, 그 편지가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고, 서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고...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꿈꾸는 자로서, 준비하는 자로서
편지에 무엇을 담아 세상에 펼쳐보이고 싶으신가요?
모두들 소중한 그리고 여유로운 가을 마무리하시길...
이 시와 함께요. ^^
행복(幸福)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월간 <문예>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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