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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지리산 종주(3)

 

◆ 제석봉(帝釋峰, 1,808m)

 

     제석봉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주변이 평전인데 다가 목책을 쳐서 위험하거나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다.

    제석봉에는 옛 날에 하늘나라인 제석천(帝釋天)에 제사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던 곳이다. 제석천을 관장하는

제석천와은 민간신앙의 수호신으로 십이천(十二天)의 하나이며,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와 도리천( 利天)의

희견성(喜見城)에 살면서 인간의 선악(善惡)과 사정(邪正)을 관장하고, 저승의 아수라(阿修羅)를 통제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불보살들을 호위하는 12신장(神將) 중 우두머리 신장이다. 

    *십이천(十二天): 범천(梵天), 지천(地天), 월천(月天), 화천(火天), 수천(水天), 풍천(風天), 염마천(閻魔天),

                              나찰천(羅刹天), 다문천(多聞天), 제석천(帝釋天), 도리천( 利天), 대자재천(大自在天)

    *제석신(帝釋神): 민간신앙에서 나온 가신제(家神祭) 대상의 하나로 일명 세존(世尊)이라고도 한다.

무당이 숭봉(崇奉)하는 신의 하나로 집안사람들의 수명을 맡아보며 곡물, 의류와 한 집안의 무사태평을 맡아본다.

신체(神體)는 작은 단지에 쌀 또는 조를 넣어 백지로 덮고 또 뚜껑을 덮어서 다락 위나 부엌 한 귀퉁이에

안치하고 헝겊 조각을 잡아매어 놓는다.(부루단지)

    이 성스러운 곳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저지른 상처의 흔적인 제석봉 횡사목이 인간을 비웃고 서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간에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 천년, 죽어 천년'으로 찬양 받는 태백산이나 소백산의 주목 고사목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제석봉에 장승들처럼 서 있는 죽은 나무들도 그 수명을 다한 고사목이라면 이 역시 아름다운 정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것은 고사목이 아니라 횡사목(橫死木)이기 때문에 아름답기는커녕 그 내력을 알고 보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제석봉 일대에는 전나무와 구상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자유당정권 말기에 산청 출신의

농림부장관의 삼촌이라는 자가 조카의 힘을 믿고 성스러운 제석단에 다 제재소를 차려 놓고 질 좋은 나무만

골라 도벌하여 하산하기 쉽도록 제재하였는데 이것이 국회에서 말썽이 나 조사단이 구성되자 증거인멸(證據湮滅)을

목적으로 고의로 불을 질러 주변의 수 백년 생 전나무, 구상나무들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여 오십 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서 서 있는 것이다.

    공원관리소측은 이러한 내력의 간단히 요지만 적은 입간판을 세워 놓고, 등산로 양측에 목책을 쳐 출입을 제한하면서

어린 구상나무 묘목을 심어서 복원을 꾀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복원이 이루어지겠는가?

    나무가 없으니 초본성 식물이 번창하여 이 곳에도 연하선경처럼 산오이풀, 구절초, 쑥부쟁이, 투구꽃 등 야생화들이

봄, 가을에 예쁘게 피어 난다.

횡사목 내력 공시 입간판

◆ 톱날능선

 

    제석봉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천왕봉 오름 길이 시작되는 통천문까지 약 1Km 남짓한 거리에 여러 개의

날카로운 암봉이 솟아 있고, 양측은 급경사 낭떠러지라 등산길은 이 암봉들을 이리 저리 피하면서 어렵게 지나간다.

사람들은 이 곳을 톱날처럼 날카롭게 톱니가 솟아있다 하여 '톱날능선'이라 부른다.

    가장 잘생긴 암봉 앞에는 반갑게도 백두산 해발 2000미터의 수목한계선에 빽빽이 서 있는 사스레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대간의 끝까지 종주하며 흘러왔는 모양이다.

톱날능선 암봉

    톱날능선의 북쪽이 지리산 10경 중 제9경 '칠선 계곡(七仙溪谷)'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창한 원시림이 하늘을 가린 속에 초록빛 물살(綠水)이 잠시 심연(沼)에 머물었다가는 곧 하얗고

반들거리는 암반위로 굉음과 물보라와 포말을 토하며 떨어지기(瀑布)를 연속으로 반복한다. 위로부터 이름 있는 것만 해도

삼층폭포, 마폭포, 대륙폭포, 칠선폭포, 선녀탕, 용소 등이 그것들로서 한 여름에는 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난 해 답사했었던 칠선계곡은 현재까지도 지리산 최고의 계곡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칠선계곡의 칠선폭포에서 천왕산 구간은은 반달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출입통제지역이라

사전예약으로 공원관리소 직원의 대동없이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함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고 그저 이

톱날능선에서 수박 겉 핥기로 내려다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칠선계곡은 내려다보는 경관만으로도 속이 후련하도록 좋다.

톱날능선에서 내려다 본 칠선계곡

    톱날능선이 끝나고 천왕봉을 마지막 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양쪽은 천길 벼랑이고 사람 하나 지나 갈 수 있는 바위틈에

위를 또 바위가 덮은 문을 '통천문(通天門)'이라 부른다. 하늘로 오르는 문이란 뜻이다. 이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이요,

천국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올라보면 三道 五郡 15面을 거느리면서 萬山 위에 우뚝 솟아있는 일망무제의 그 경치가

참으로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통천문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오를 수 없다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지금은 교행할 수 있도록 넓게 갈지(之)자로

철계단을 설치하여 여기까지 와서 오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천왕봉(天王峰, 1,915.4m)

 

    천왕봉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장장 1,572Km(약 4천리)를 달려 온 백두대간의 종착점이다. 동시에 지리산

종주 산행의 목표이자 종착점이기 하다.

    천왕봉의 주소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이고, 동시에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300번지이기도 하다.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은 제2봉이지만 한라산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화산 분출로 생겨난

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맥으로 연결된 산으로는 남한 제1봉이다.

    정상에는 밥주걱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의 어깨 높이의 자연석 표석이 있는데 동쪽의 전면에는 세로로

'智異山天王峰'이라 한자로 표기되고 그 밑에 1,915m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서쪽 후면에는 '韓國人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는데 자세히 보면 '韓國' 두자가 다시 새긴 것이

표가 난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慶尙'이라 썼던 것인데 그 후에 고쳤다는 것이다.

    천왕봉 정상 서편 암괴에 언제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하늘을 받히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天柱'(천주)라고

음각되어 있다.

천주

    옛날에는 천왕봉에 신비스런 사연이 많은 '성모(聖母)' 여신상(女神像)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때 경주산(慶州産)

옥석으로 다듬어진 이 여신상은 높이가1.2m이고, 너비가 50cm로 천 여년을 지리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천왕봉에

모셔져 있었는데 몸에는 수많은 상처를 입고 지금은 하산하여 중산리에 있는 천왕사라는 조그마한 암자에 옮겨져

머물고 있다고 한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모셔진 지리산성모상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저 <국토와 지명> 중에서

    천왕봉 여신상이 겪은 수난은 고려 말 서기 13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부지방 일대에 노략질을 나왔던 왜구들이

황산(지금의 운봉) 싸움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하고 급한 나머지 지리산을 넘어 도망가면서 그 분풀이로 천왕봉

여신상을 두 조각 내었는데 그래도 여신상은 상처를 입은 채로 천왕봉에 서 있었다.

    왜정 때 일제가 여신상을 모신 사당을 철거하고 여신상을 산 아래로 굴러버렸다. 그 후 산청에 사는 어느 처녀가

여신상을 다시 산꼭대기로 올려놓았는데 해방되던 해에 누군가에게 보쌈을 당해 행방불명 되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왔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천왕봉 여신산은 사당 안에 모셔져 많은 기도객들의 염원을 들어주고 있었는데 '72년 봄

천왕봉에서 철야기도를 한 모 교인들이 천왕봉 여신상을 부셔서 없애버려 또 행방불명이 되었다.

    '86년 1월 천왕사 혜범스님이 천왕봉 아래 골짜기에서 여신상의 머리부분과 몸통을 발견하여 정성스럽게 봉합하여

 지금은 천왕봉 남쪽 자락 천왕사에 모셔 놓고 있지만 다시 천왕봉으로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언제 또

어떻게 수난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리산 천왕봉 성모 여신상이 천왕봉으로 돌아와 안전하게 안치되어 지리산을 찾는 많은 산악인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천왕봉 일출(日出)' 지리산 10경 중 제1경이다. 그러나 이곳의 기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삼대에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유전되어 올 정도로 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따진다면 비 성수기 평일에도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고 올라와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 족히 사 오십 명은 되는데

이 중 한 사람이라도 삼대에 덕을 쌓지 못하면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결국 일출을 못 본다는 뜻이다. 

   

 
천왕봉 일출

    일출을 못 보는 대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조망은 그저 그만이다. 정동으로는 별 특별한 산은 없고 희미하게

진주 진양호가 식별되고, 동북으로는 희뿌연 안개에 덮여 있는 합천호를 가운데 두고 서쪽의 황매산, 북쪽의 오도산이 있고

그 오른쪽 구름위로 불꽃 형상의 화성(火星) 가야산이 하늘에 살짝 얼굴을 내밀어 신기루처럼 나타나 있다.

    남쪽으로는 큰 산이 없으니 산을 식별하기는 꾀 힘들지만 남해의 금산인 듯한 산이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식별된다.

그리고 하동의 섬진강 하구 쪽으로 여천만 바다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광양의 백운산이 남서쪽 하늘금을 그린다.

천왕봉 남쪽 전망

    북쪽은 덕유산 주능선 30Km가 겨우 엄지손가락 길이만큼으로 보인다. 가까운 쪽에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도토리 키

재듯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을까! 그 뒤로 삿갓봉, 무령산 그리고 최고봉 향적봉, 오른쪽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지봉 그리고

덕유산괴의 시작 덕유삼봉산이 뚜렷이 보인다. 그 오른쪽에 대덕산도 보인다.

    그뿐인가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이 뚜렸하게 보인다.

천왕봉 북쪽 전망

   . 

    
    천왕봉에서의 조망은 아무래도 서쪽을 바라보는 것이 하이라이트다. 반야봉과 그 옆 중봉이 마치 발가벗고 엎드린

여인의 궁둥짝 같은 모양으로 제일 먼저 눈에 띄고, 왼 쪽에는 노고단과 오른쪽에 만복대가 똑 같은 모양의 삿갓을

엎어놓은 듯한 삼각형이 반야봉을 가운데로 하여 대칭이 되고 있다.

천왕봉 서쪽 전망

반야봉에서 이쪽으로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 톱날능선이 한눈에 다 보이고, 대피소 건물들은 직접 보이지 않지만 벽소령, 세석, 장터목이 어디쯤인지

쉽게 판별할 수도 있다.

    저 가물가물한 길을 내가 걸어서 온 것이다. 정말 장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쪽 전망에서 또 하나 흥분시키는 것이 있다. 동북쪽에 가야산이 마치 하늘에 신기루처럼 떠 있듯이 서쪽 노고단 위로

하늘 가운데 희미한 산 그리매가 보인다. 방향으로 보나 위도 상으로 보나 광주 무등산이 틀림없다. 거기가 어딘데 여기서

무등산이 보인단 말인가! 이곳 천왕봉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 바로 그것이다.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또 다른 반갑고 낯익은 두 주인들을 만났다. 다름 아닌 백두산에서 만났던

귀한 나무들이다.

    그 하나는 백두산 수목한계선에서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최전선을 지키는 보병처럼 군집해 있던 사스레나무

여기 지리산 종주로 주변 곳곳에서도 간혹 보였고, 톱날능선의 가장 잘 생긴 암봉 앞에도 암봉과 어울리게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또 하나는 키 큰 나무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도 빨간 열매 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던 마가목이 여기서도 주렁주렁

새빨간 열매를 달고 있었다. 

 

천왕봉(1,915.4m)은 지난 2010년 5월 9일에도 올라 갔다 왔었던 곳이라 시간상 사진은 생략하고 대충 보고 내려 갔다.

현재 시간 18시 30분으로 시간 계산을 해보니 빨리 걸어도 제시간 맞추어서 종착지인 중산리에 도착하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해가 저물어 깜깜해지면 더욱 더 낭패다. 뛰다시피 내려 가는데, 급경사 길이라 여의치가 않다.

 

중산리 주차장을 3.5km쯤 남겨놓은 지점에서 해가 졌다. 사방에 칠흙같은 어듬이 내려 앉으니 가득이나 눈이 나쁜데 비록

헤드렌튼을 했다고는 하지만 길 찾기도 그리고 발 디딤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쩌라.

 

뒷 일은 나중에 해결항 요량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마음이 급하니 더러 헛 딛기도 하여 위험한 순간을 몇 번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정해진 시간인 정각 21시에 중산리 거북이 식당에 도착하니 있어야 할 안내자도, 우리가 타고갈 버스도,

그리고 같이 온 일행들도 보이지를 않는다.

 

밧데리가 나간 핸드폰을 요령껏 조작하여 안내자와 통화를 하니 주차장에 있는데 곧 올라 오겠다고 한다.

이런, 젠장. 뭐 이런놈들이 다 있나.

올 때도 그 고생을 하여 늦게 도착시키는 바람에 위험한 밤 산행을 하게 하더니만,

도착해서도 그 모양이구만.

속으로욕이 나왔지만 어쩌랴.

 

땀으로 범벅이 된을 씻고자 식당주인에게 부탁을 했더니 샤워실에서 샤워를하란다.

샤워를 끝내고 산채비빔밥을 한 그릇 저녁으로 했는데,

오늘 먹은 처음의 식사이자 밥이다.

 

시간에 종주를 하자니 어디 휴식할 시간도,

딱히 요기를 할 시간도 없었기에 거의 굶다시피 했는데,

그 덕에 몸 속에 있는 불필요한 지방은 좀 태워 없앤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샤월할 때 보니까 얼굴이 내 얼굴같지 않게 작아졌음이 느껴졌기 떄문이다.

 

만 하루만에

총 15시간 50분 산행에

도상 거리로 35.7km를 걸었다.

 

몸은 별로 지치지 않았지만,

다리도 뻐근하고 발도 아파온다.

내려올 떄 마음이 조급해서 아픈줄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니 전신이 아파온다.

게다가 내려올 떄 어두워서 바위에 부딪친 좌측 무릎이 아파온다.

 

그래도 해냈다.

남들이 2박 3일 혹은 3박 4일 일정으로 산장에 자면서 종주했었던 지리산 종주를 당일치기로 해냈다는

것에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하기에는 좀 벅차다.

지난 번 봉정암 등정 떄 팔십살 난 할머니가 오로지 신심(信心) 하나를 지팡이 삼아 그 높고도 험한 봉정암을 오르는

심정으로 나도 해냈다.

 

평지 걷기도 아니고 돌길, 그것도 1,500m가 넘는 20여 개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 길 35.7km을 당일에 넘나든다는

상당한 모험심과 체력, 그리고  인내와 힘 및 요령이 필요하다.

 

나도 사전에 준비해간 스틱 두 개가 아니였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힘들 때마다 위에 잡은 화두를 들면서 스택 두 대를 지팡이 삼아 상체를 기대고 그대로 쉬었기 떄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이 번에 90명이 간 중에서 완주자는 나 밖에 없다.

나머지 분들은 모두 중간에 탈출했거나 아니면 중산리에서 올랐다가 내려왔다.

 

그 와중에서 중산리에서 올랐다가 내려오던 한 명이 다쳤단다. 

21시에 출발하기로 했었던 버스가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오는 사람들 중 6명이 21시 35분에 내려오는 바람에

거림에 갔다가, 이 부상자를 태우기 위해서 닷 중산리로 왔는데, 22시 25분이 되어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그러지 나머지 승객들이 아우성을 친다.

원래 18시 정각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올 떄 사정으로 21시 출발로 늦추었으면 21시에 출발을 해야지 언제 갈거냐고.

지금 가도 전철, 버스등 대중교통편은 다 끊어지고 택시를 타던지 갈 길이 망막한데 어찌할 것인가고.

 

할 수없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22시 28분에 버스가 출발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5월 22일 새벽 2시 25분이다.

 

 

   

 

 

     

    고도가 높고, 짙은 숲 속을 걸었기에 그늘이 시원할 뿐만 아니라 습도가 적절하고,

 무엇 보다도 공기가 맑고 군데군데 좋은 전망이 있어 눈요기를 할 수 있었기에 피로를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옛 말에  인자요산(仁者樂山)이요,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했는데, '어질고 착한 사람 산을 좋아 한다'는 뜻이지만

역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착하고 어질게 된다'는 뜻도 된다.

    산에서 만나거나 지나치는 사람, 사람 따라서 더러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상냥하고, 건강하고,

남녀 모두 씩씩한 것 같다.

 

   

 



 

3. 지리산 종주 개념도

 

산꾼들에게 꿈의 능선이라 불리우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산행은 산행을 즐기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에도 그리는  꿈의 산행이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는 무박종주산행은 도상 총거리가

35.7km다.

 

 

 * 지리산 주능선 주요 지점간 거리표시 *

 

 성삼재에서 노고단 까지는 3.1km이고

주능선(노고단~천왕봉)의 거리가 약25.5km이며,

성삼재에서 중산리 주차장 까지의 총거리는 35.7km 이다.

 

 

 

일반적인 지리산 산행코스 

 

     * 무박종주코스 : 성삼재-노고단-삼도봉-토끼봉-연하천-벽소령-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연하봉

                              -장터목(중간 탈출로)-천왕봉-중산리 주차장(약12~16시간)

     * B코스 : 거림매표소-세석산장-장터목-천왕봉-로터리대피소-중산리 주차장(약8~9시간)

     * C코스 : 중산리 주차장-로터리대피소-천왕봉-장터목-중산리 주차장(약7~8시간)

 


 

* 지리산 무박종주 산행 요령 

 

1. 초반에 절대로 오버페이스를 하지 말자.

 

     의욕이 앞선 나머지 초반에 무리한 페이스로 산행을 하면 그 후유증이 오후에 체력저하로 나타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를 때 땀을 빼지 마시고 산행을 시작해야한다.

 

2.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종주산행 최대의 적은 무게다. 식사도 가능하면 행동식(주먹밥,떡,김밥,선식 등)으로 준비하고,

       산행 도중에 산장에서 행동식을 사서 드실 수 있으니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3. 스틱, 무릎보호대 등 산행 시 보조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4. 당일 종주시 중간 탈출로는 세삭휴게소와 장터목산장이므로 자기 체력을 잘 고려해야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