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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범소유상이 개시허망

 

 

 천호대교를 지나며... 잔득 흐리고 비 내리는...

 

 

한 생각 잘못 굴리면 여섯 도적이요,

잘 굴리면 부처가 된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상을 보되 상이 아닌 실체를 보면 여래를 보리라’는 이 말은 우리 모두 다 아는

부처가 설한 8만 4천자의 경전 중 대승경전에 속하는 금강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무릇 相이란 모두 다 거울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기에 모두 다 허망하니 상을 보되 그림자인 허상을 볼 것이 아니라

허상이 비춰지는 거울 반대편의 實體의 眞相을 본다면 여래를 보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부처께서는 말했던 것이다.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다만 능히 이와같다면 어찌 실상을 보지 못했다고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는 뜻은 삶과 죽음이 하나요, 지옥과 천당이 하나며

너와 내가 하나고 우주와 내가 하나(宇我一體)라는 뜻이다.

 

이 하나인 이치를 안다면 꺠치지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아 가는 일상사에는 많은 일이 있지만은 공통되면서도 소중한 것은 바로 삶과 죽음의 일이요,

깨달음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하나인 이치만 안다면 生死大事를 해결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여

걱정할 일이 못된다는 것이다.


부처 당시의 유마거사와 그 후대의 중국의 方거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浮雪居士 같은 분이 있었을 때에는 불교가 크게

융성했었지만, 이들과 같은 재야불자가 나타나지 못하여 거사들이 변변치 않을 때에는 불교 또한 그러했다.

오느날  수행자뿐만이 아니라 스님들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지위도 높고 많이 배운 재야불자들인

거사들이 수행모임을 갖고 신행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향후 불교계 뿐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힘이 될것이 분명하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행하는 것이 더 낫고,

백번 행하는 것보다 한번 깨닫는 것이 더 소중하다.

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

百行不如一覺

 

절에서 잠깐 예불하고 죽비를 치는 가운데에서도 이심전심으로 크게 얻는 바가 있을 것이고,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꺠달는 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바쁘게 살아 가는 가운데서도 어떻게하면 행복하게 살고,

또 어떻게 해야 깨달을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최근의 話頭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많이 배운다.

나도 여러분들에게 분명코 法을 설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항상

적어도 여러분으로부터 무엇을 배울것인가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이어야 한다.

옛 말에 "나를 착하다 하는 자는 나의 적이요, 나를 악하다고 하는 자는 나의 스승이라"고 하였다.

3祖 승찬대사도 “나쁜 말도 관해보면 이것이 공덕이요, 곧 나를 깨우치는 선지식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사회에서 성직자가 잘못하면 이 사회가 엄청나게 잘못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부대중들은 무엇이 참진리인줄을 알지 못하는 고로

자연의 이치 즉 진리를 모르기에 그나마 '모든 성직자들이 나름 뭣을 알고 있다'고 믿고 그들이 하는 바를

따라서 믿기 때문이다.

법이 이 사회를 계도할 때 결과적 현상만을 대상으로 다스린다면 종교는 분명 그 원인을 다스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법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죄지은 것은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볼때는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는 것도 큰 죄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인데,

종교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법은 죄를 지어 놓은 그것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심리적으로 볼때는 법도 원인을 추론하여 다스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힘이 있어야 행복하다.

아는 것도 힘이고,

건강도 힘이고,

조직도 힘이고,

돈도 권력도 힘이고

상호 신뢰도 모두 힘이다.

따라서 힘이 있어야 그 사람이 행복하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힘은 영원하지 못하다.

우리는 숨 한번 멈추면 저 세상으로 간다.

이것을 티벳의 '死者의 書'에서는 中陰身이라 하는데, 이것이 변해서 우리말 '죽음'이라고 한다.

영원한 힘은 바로 도(道), 즉 깨달음이다.

근본을 잘 닦는 그 힘

즉 자연의 이치가 바로 도다.

다시 말해서 물흐르듯이 흐르는 것이 바로 道인 것이다.

부처께서는 왜 本然眞心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있는 常住不滅의 이치를 말하지 않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하다’는 虛妄한 이야기를 하셨느냐 하면 

중생들은 허망한 이야기를 하여야만이 집착을 버리기 때문이다.

부처께서 처음 깨치시고는

첫 마디가 "누구든지 깨달아 있다”하셨으나 아무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無常’부터 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모든 고통은 집착으로 부터 온다. 집착을 없앨려면 도를 닦아라.”하면서 苦執滅道의 사성제를 주창하면서

49년동안 중생들을 위해 說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모든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 이 몸뚱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대지도, 이 우주도 영원하지 않다.

생한 것은 반듯이 다시 멸하는 것이 온 우주 자연의  이치다.
상을 보되 상 아닌것을 보면 곧 부처를 본다고 하였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상을 보되 상 아닌 眞體를 바로보면

여래가 바로 부처님이라는 말이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또 아주 쉬운 이치다.

 

좀 전에 올린 부설거사 悟道頌에 보면

“눈으로 보되 본 바 없으면 分別할 것이 없고,

귀로 듣되 들은 바 없으면 是非가 끊어지니 분별 시비를 다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고 귀의하라.”고 하였다.

상을 보되 상아닌 것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는 말은 곧 허상(虛相)에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상을 보기는 보되 집착하고 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기는 보되 눈에 집착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선생을 영어로 teacher라고 하고, 대학교수를 professer라 하고,

인생의 지도자를 Mentor라 하는데, 이 인생의 올바른 지도자를 한번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정말로 올바른 단 한 사람의 멘터(Mentor)를 만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인생의 지도자를 멀리 찾아서는 안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 내 인생의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뚱아리를 분석해 말할때 나라는 것은 육근(六根)을 말하는 것이다.

안근, 이근 ,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의 육근을 나의 뿌리라 하는데 알음알이를 일으킬 때는 육식(六識)이라고 한다.

또 번뇌를 일으킬 때는 육진(六塵)이라고 하고, 나쁜 짓을 할 때는 육적(六賊)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중생은 도적놈을 끌고 다니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좋은 것이다 생각해서 집착을 하고 나쁜 짓을 하여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우리 주의에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돈이 좋다고 생각했을 때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최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것 중에서 판검사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최고의 지성인들인 판검사들까지 돈에 현혹된다면 이사회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판결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중생은 올 때도 빈 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 손으로 간다. 돈을 좋아하다 보면 인생을 망쳐버리고 만다.

귀로 좋은 소리 들으려 하다가 인생을 망칠 때 그것은 이적(耳賊)이요,

말 잘못해서 인생을 망칠때에는 설적(舌賊)이고,

몸뚱아리 잘못하여 인생 망치면 身賊이며,

생각 잘못하여 인생망칠 때에는 意賊인 여섯 도적놈이 바로 우리의 육신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것을 또 잘 굴리면 바로 부처가 된다.

일월광명부처, 성문여래부처, 설법여래부처, 천백억화신 등 이와같으니

한 생각 잘못하면 도적놈이요, 한생각 돌리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며,
부처께서 마시면 바로 甘露水가 된다. 이 한 이치를 알면 매사를 다 알게
되는 것이다.


물도 차게 하여 마시면 六角水가 되어서 좋고, 더운 물은 五角水라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육각수보다 더 좋게 만드는 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로수로 만들어 마시면 더욱 좋다.

우리는 기왕에 귀하게 나신 몸이고 그러하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할것 아난가.

마음은 욕심을 비우고 살고 부정보다는 긍정적으로 살아 가갸 한다.


똑같이 학교를 다니더라도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이루는 이들은 그만큼 긍정
적으로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정과 긍정까지도 모두 뛰어 넘으면 깨치게 된다.

그와같이 이 물을 감로수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면 " 이 물이 바로 감로수다"라고 意念을 주입한 후 마시면

바로 감로수가 된다. 만약 佛者라면 자기 안에 내재한 관세음보살을 정성스럽게 부르고 난 후에 물을 마시면 그대로

감로수가 되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면 엔돌핀이 증가하고 화를 내면 아르레날린이 나온다고 과학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판사가 괴롭고, 변호사가 괴롭고, 검사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괴로울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때 오로지 곡식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면 그 농부는 괴로움에 싸인다.

왜냐하면 풍년이 들면 곡식 값이 떨어져서 고민이요, 흉년이 들면 곡식 값은 올라가지만 양이 적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이와같이 돈을 목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언제나 실패하게 되지만, 이를 즐고운 마음으로

지으면 항상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다. 돈을 목적으로 모든 것을 행하면 언제나 실패를 맛볼 수 밖에 없다.

밭에 씨를 뿌릴 때부터 보람을 느끼고, ‘이 농사를 지음으로써 내 아들 딸과 이웃과 모든 이들이 좋은 일을 행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해서 깨달은 사람이 되어질지이다’하면서 농사짓는 이의 행복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씨 뿌리는 그 자체가 바로 나와 직결된다. 제때에 씨를 뿌려야 하는 것처럼 곡식 자라는 것도 인생살이와 다름이

없으며 곧 깨달음과 직결되는 것이다.


뿌리를 깊이 내려야 곡식이 잘 자라고, 잡초 즉 번뇌망상을 뽑아줘야 곡식이 충실히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안되며, 적게 줘도 안된다.

또한 아무리 곡식이 잘 익었다 하더라도 울타리가 없으면 비바람에 쓰러지고 만다. 이 울타리가 바로 자신이 세운

스스로의 경계인 계율이요, 법이다.

옛날에 二祖 혜가는 달마에게 물었다. “스님 어떻게 하면 지상극락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달마가

이르기를 “마음을 觀하면 법이 모든 행을다 섭렵한다(觀心一法 總攝諸行)'고 답했다.


이는 마음자리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얻는다는 뜻으로 다른 말로 이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추임을 따라가면

宗旨를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이것을 더욱 쉽게 풀이하면 모든 것의 근본은 나요, 나의 근본은 마음이다라는 것이다.

이 마음자리를 알면 모든 것을 얻고 육근, 육식에 끄달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는데 끄달려도 안되고

듣는데 끄달려도 안된다.

五慾樂이란 財, 色, 신, 명, 수이다. 돈버는 재미, 남녀 간의 사는 재미, 잘먹고 잘입는 재미, 이름날리는 재미,

잠자는 재미에 끄달려서는 천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낮에 열심히 장사한 사람은 저녁이 되면 하루 벌이를 계산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계산해야 할 때다.


마음을 주인으로 삼은 사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한 티끌에 불과한 것이다. 죽어서 명당에 묻히고자 명당자리를 찾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이 모두 明堂이기에 명당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항상 공부하고 자신을 다스리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우리가 어디서와서 어디로가는지 우리의 인생을 계산해 볼 때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참구하고 또 참선하면서 공부하여 자기자신을 가꾸고

자신의 온 자리를 찾아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그렇게 될때 우리 모두는 바로 佛菩薩이 될것이다.

 

그래서 부처도 말했다.

모든 것에는 佛性이 自在하니

그 자성한 불성을 꺠달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이것이 바로 皆有佛性 心卽是佛인 것이니

달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말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이 곧 부처니

그 부처를 바로 알고 찾아서 잘 가꾸어 갈야 한다.

 

庚寅年 四月 初八日 佛誕日에

부처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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