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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비 오는 날 관악산... 신기록?

지척을 분간할 수없는 구름과 비

간혹 비가 그칠 때 마다 산허리를 휘감고 올라오는 운무와 산 위에서 바라보는 운해

마치 설악산의 한 자락을 보는 것같아서 좋았다.

 

06시 50분에 산을 올랐으니 바쁠것도없기에 쉬엄 쉬엄 가기로 했다.

관음사 입구에 있는 시민체육공원의 정자에 앉으니 빗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릴뿐 호젓해서 너무나 좋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꽤나 흘렀나 보다.

불공을 드리러 오는 불자들이 지나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인간들이 없으니 一心三分法으로 오르기로 했다.

즉 머리 따로, 발 따로, 손 따로다

각자 알아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의 선장은 머리가 아니라 발이다.

머리속으로는 나무와 돌과 풀과 대화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손은 우산이 나무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고

발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숲속길은 너무 어둡다.

구름이 자욱하여 동서남북 앞뒤가 잘 보이지를 않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 가고 있는데,

어디쯤일까

갑자기 웬 꼬마가 속삭인다.

자세히 보니 꼬마 소나무 요정이다.

 

" 이 바위 뒷쪽 낭떠러지 앞에 잠자는 곰돌이 三母子가 있는데 보고 가세요."

"에이, 내가 관악산을 그렇게 많이 올랐지만 없었는데 무슨 곰이 있어?"

" 아니, 있다니까요."

" 그래?  없으면 너 혼날줄 알아"

 

이 녀석을 따라 낭떠러지 끝으로 가보니

아, 어미 곰과 새끼 꼼 2마리가 고개를 가슴에 묻고 동면에 들어간것같은 바위가 있는게 아닌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사진프레임 중 내가 모르는 하트형 프레임이 뜨는게 아닌가.

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오늘 새로운거 하나 배웠네.

 

사람 하나 겨우 비집고 지나갈 수 있는 하 관악문 앞에 오니 바람이 세차고 운해가 심해서 앞이 잘 보이지를 않는다.

하지만 경치는 정말로 멋지다.

폭우가 솟아졌지만 줄을 잡고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하니 어쨰라.

양손을 사용하기 위해서 우산을 접어서 지팡이로 삼고 오른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올랐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위에 올라서서 보니 천길 낭떠러지길이 아득한데 바람이 너무 세차서 몸을 가누기가 쉽지가 않아 상당히 위험하기는 한데

정말로 절경이고 운무에 휩싸인 바위 하나 하나가 모두 멋진 풍광을 하고 있다.

 

이어서 상 관악문을 지나니 운무 속에 휩싸인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 막는데 직벽에 가까운 화강암이 비를 맞아서 반질거린다.

뿐만 아니라 바람까지 거세니 위험한데, 어쩌라. 그 윗쪽이 연주대인데, 여기까지 와서 우회할수는 없지 않는가?

직벽에 설치되어 있는 쇠줄을 타고 오르니 연주암에서 연주대로 참배하려오는 기도객들이 한 두명 보인다.

 

화엄장사상으로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의 통치이념을 제공했었던 의상의 화엄사상은 이곳에서도 구현된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받침돌을 세우고 세웠다는 연주대는 처음이름이 의상대였고 연주암과 관악사였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자 일부 뜻있는 인사들이

이곳에 올라서 개경을 보면서 옛 나라를 사모했다고 해서 연주대와 연주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왕권쟁탈전에서 셋째동생에게 패한

세자 양녕과 둘쨰 효령이 이곳에 올라서 한양을 바라보면서 실권한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왕권에 대한 애착과 미련과 울분을

토했다고 해서 戀主臺와 연주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두 이곳의 경치가 절경이라서 후대에 지어낸 전설로 보인다.

연주대를 지나 연주암에 가서 손을 씻고, 다시 관악사지를 갔다. 사람이 없으니 자세히 관찰하기가 좋았다. 이것 저것을

자세히 조사하고 의자처럼 생긴 돌막에 앉아서 좌선도 하고 인간 냄새가 나지 않으니 참으로 좋았다.

깊은 산림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山地寺刹址 돌막에 앉아서 비를 맞으면서 그 빗소리를 음악으로 삼아서 고요히 내면의 움직임을 들어다 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일반인들이야 폐사찰지의 정적 때문에 무섭다고들 하겠지만, 나야 참으로 좋다.

 

연주대 밑으로 나있는 우회산길을 따라서 원점회귀 산행을 했는데, 같은 길을 그대로 따라서 오기 싫어서 국기봉을 넘어

관음사 뒷산의 직벽을 타고 관음사 옆으로 내려왔는데, 연주암에서 사당역까지 총 길이가 5km로 제법된다. 내려오는 길에 거북이 등 위에

또 한 마리의 거북이가 올라타고 있는 형상의 참으로 묘하게 생긴 바위를 발견했다.

 

이 코스는 내가 개발했었던 코스로 그렇게 많이 다녀도 발견치 못하다가 비오는 오늘 발견했으니 산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오묘함이 있다고 본다.

 

관음사 좌측에 있는 冠登亭에 오니 그 때서야 비기 좀 그치면서 등산객들이 한 두명 올라오고 있었고, 관음사 한 참 아래에

있는 정자에는 한 젊은이가 참선을 하고 있었다.

 

올라 갈 때 어찌나 천천히 구경하면서 갔는지 연주암에 도착하니 10시 10분이였다. 보통 때면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2시간이나 더 걸렸다. 통상 이 코스는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그 2배가 넘는 5시간 반이나 걸렀으니 이것도

신기록이다.

 

사당역 - 연주대 : 4.5km

연주암 - 관악사지 - 사당역 : 5km

Total : 9.5km,

총소요시간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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