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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회룡포와 삼강주막

어제는 내고향 용궁으로 간산을 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새벽에 길을 나서서 이수역에 가니 이미 신발로 물이 새어들어왔다.

06시 55분 이수역을 출발해서 사당에서 나머지 일행들을 태우고 감곡까지 가니 날이 개어온다. 충주 휴게소에 들어 가니 언제 그랬나싶게 날씨가

맑아지면서 햇빛이 쩅쩅 내려쬐인다.

목적지 삼강주막에 도착하니 09시 50분인데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강둑에 올랐더니 마침 고향 중학교 후배 일행들이 소풍을 나왔는데,

어제 회룡포에서 1박하면서 동동주 1말을 6만원 주고 맞추어 왔다고 하면서 같이 나누어 먹자고 한다. 우리 회원들이 둘러 앉아서 이들이 가지고 온

문어 숙회와 수박을 안주 삼아서 거의 반을 비웠다. 이 동동주는 정말로 맛 있었다.


다시 주막으로 가서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씩을 마셨는데, 아까 마셨던 동동주만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마셨던 것은 동동주고, 돈주고 사

마신 이번 것은 막걸리이기 때문이리라.


삼강 강당과 우리나라 초대 재벌이였던 삼호방직 그룹의 정재호 회장 집과 그의 묘 및 그의 선대 묘를 看山하고,
용궁시장으로 나와서 단골식당에서 전국에서 자가용 타고와서 먹고 간다는 그 유명한 박달순대와 오징어 불고기를 시켜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유명한 용궁양조장의 진떙이 막걸리를 시키니 없다고 한다.

할수없이 이 집에서 팔고 있는 유일한 막걸리인 문경막걸리를 시켜서 마셨는데 맛이 별로다.

이 집은 예약도 안되고 번호표를 받은 후 줄서서 기다리다 먹었는데, 참나무 숯불에 구은 오징어불고기는 참숯향이 배어 있어서 정말로 좋았고,

박달순대도 국물이 진국이고 순대가 부드럽고 고소해서 모두들 맛나다고 하면서 잘 먹었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이어서 회룡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50년 전통의 용궁양조장에 들러서 막걸리 양조하는 전과정과 발효탱크 및 물타는 탱크 등을 구경하고 양조장 사

장이 마시라고 무료로 내어준 생막걸리 한 동이를 마셨다.

이어서 1박2일 찰영차 이곳에 들렀던 강호동 일행이 마신 후 골아떨어져서 찰영을 중단해야만 했던 문제의 그 진떙이(막걸리 발효 후 거르지 않은

생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셨는데, 모두들 맛 있다고 야단들이다. 해서 부득이 전녁에 마실려고 1말반을 구입했다. 옛 농부들이 샛참 때 식사대용을

마셨던 진떙이는 마치 마죽처럼 걸쭉하고 달면서 입에 착달라붙는다.시중에 출하되는 막걸리는 이 진떙이에 2배의 물을 희석해서 병입한 후에

출하되고 시판된다.

회룡포에 도착하니 강호동의 1박2일에 방영된 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해져서 이미 사람들로 붐빈다. 옛 날에는 한적하니 아주 조용했던 곳인데,

역시나 방송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1. 龍宮 回龍浦



충효의 고장이자 물맑고 예절바른 도시로 이름난 경북 예천,

그 중에서도 龍宮은 현재까지도 상투를 틀고 살만큼 고루한 班村으로 유명한 곳이다.



소백산의 깊은 물이 흐러내려서 물맛이 달다. 그래서 이름도 단술醴 샘泉인 예천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동해 용궁처럼 맑디 맑은 물이 풍부한 고장이라서 龍宮이다.

그만큼 물 맛좋고 맑고 맑은 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원래 회룡포는 이미 간산했었던 곳이다. 회룡포에서 감아 돌아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기운을 받고, 이어서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낙동강과 경북 봉화에서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회룡포를 거쳐서 휘감아 돌아오는 沙流川인 내성천 및 聞慶에서 발원하여 들어오는 錦川의 세 강이

합쳐지는 세 강의 합수처인 三江 주막에서 엣 선비들이 지나온 길을 회상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영주댐이 건설 중인데, 이 댐이

 건설되면 모래 유입량이 줄어들어서 아름다운 사류천인 내성천 끝에 있는 회룡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절경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다. 원래 회룡포는 내성천이 'S'자로 감아돌아드는 마을이름이고 현재의 회룡포 마을은 소성포였지만, 회룡포가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

이름까지 바뀌었다.



長安寺는 회룡포를 굽어볼 수 있는 飛龍山 기슭에 있고, 중턱에는 回龍臺 가 있어서 가족나들이객들이 자주 찾아서 회룡포의

아름다운 전경을 즐기고 있다.





삼강 주막은 1900년에 설립되어 현재 110년이나 된 국내에 남아 있는 현존하는 유일의 주막으로 그 정취가 남다르다.

뿐만 아니라 주막옆에는 수령 500년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상주에 사는 대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배가 뒤짚히지 않느다는

속설을 믿고 주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나무를 베려 했다가 꿈 속에 흰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무를 베기전에 네가 먼저 죽을 것이다"라는 호통을 듣고는 식은 땀을 서 말이나 흘리면서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는 유서 깊은 나무까지 있다.



자고로 삼강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곳에서 우리나라 초대의 최고 갑부이자 재벌그룹을 이루었던 삼호방직 그룹의 정재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또 삼강의 그 넓은 평야지대는

산 밖에 없는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물산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그 옛 날 조선 시대에는 김해에서 소금을 실어 나르던 소금배가 이곳까지 와서 소금을 내린 후 회룡포를 돌아서 안동 하회까지 운항했었던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려 갈때나 아니면 보부상들이 한양으로 갈 때 반듯이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은 세 곳이 있다.

바로 영동의 秋風嶺과 풍기의 竹嶺, 그리고 문경의 鳥嶺이 그곳이다.

이 중에서 추풍령을 넘고 간 선비는 추풍낙엽처럼 낙방을 하게 되고 죽령을 넘어간 선비들은 죽쑤어 남주게 되지만, 삼 강의 合水處인 三江을 건너서

鳥嶺을 넘어간 선비들은 마치 새가 날개를 달듯이 장원급제를 한다고 하여서 모두들 이곳을 건너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 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 중에는 경상도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2. 三江酒幕과 三江講堂



(1) 三江酒幕



초가지붕에 진흙을 바른 벽, 토끼굴 같은 좁은 부엌, 검게 그을린 아궁이며 흙벽에 칼금까지 세월의 더깨도 고스란히 복원된 삼강주막은 요새 사람들

눈에 하나 하나가 모두 구경거리고 이야기 거리다.



그래서 얼마전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하는 강호동의 1박2일에 나오면서 부터 인근 문경, 예천, 안동, 영주는 물론이고 서울, 부산 등

경향각지로부터 최근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삼강주막.....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 - 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주막인 삼강주막은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에게 요기를

해주거나 숙식처를 제공하던 건물로서, 1900년 무렵 건축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본래 기능에 충실한 평면구성으로,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5년 11월 20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2006년 '뱃가 할매'로 불리웠던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되었으나 2007년 예천군에서 1억 5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현재 예천군은 삼강나루를 복원하여 나룻배를 띄우는 등

관광지로 조성하고 있다.

복원 당시 주막 주변에 보부상숙소, 사공숙소, 공동화장실 등을 함께 지었는데, 보부상숙소는 면적 40.41㎡로 방 2개와 대청, 부엌 등을 갖추고 있으며

사공숙소는 면적 21.60㎡로 방 2개를 들였다. 공동화장실은 외관은 전통식으로 꾸미고, 내부는 현대식 시설을 하여 편리성을 추구하였다. 주막 건물 뒤에는

수령 약 500년인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준다.




지금으로 부터 110년 전인 1900년에 이 지역을 지나가는 과객들과 보부상 등의 유숙처였었던 이 주막은 청주정씨 집성촌에서 유일한 타성받이인

유옥련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지키고있다가 90세로 타계한 후 페허가 허물어져 가던 것을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07년 예천군에서 군비 1억 5000만원을

투입하여

현재와 같이 복원시켰다.



하지만...

110년된 주막은 낡고 조그만 초가뿐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주막의 낭만과 풍류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봉화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회룡포를 돌아 나오는 내성천 및 문경에서 흘러 오는 금천이 만나는 세 강의

合水處로 청주鄭氏들의 世居處인 三江 가에

있기에 屋號가 없이 그대로 삼강 주막이다..

110년쯤 됐으니 그대로 근세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다.



원래 경상우도의 북부지방인 예천은 그 아랫쪽에 있는 안동과 더불어 고루한 영남士林의 本鄕으로 이 두 고장이 바로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의

중심이였던 곳이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반상을 구별짓고, 남녀유별을 외치며, 체면을 아주 중시하는 곳이다.

우리 선친께서 살아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 그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 양반은 아무리 급해도 뛰지 말것이며,

아무리 비가와도 비를 피하기 위해서 빨리 걷지 말 것이고

아무리 배가 고프드라도 체통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저, 양반은 대추 세 알이면 하루 요기로 충분하니

절대로 양반의 체통을 잃어서는 않된다.

또한 식사를 할 때는 고개를 숙여서 밥을 먹어서는 않되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고개를 숙여서도 않된다."



이것이 이곳에서 살았던 嶺南士林의 생활철학이였으니 나머지는 안봐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좋게 말해서 선비정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례허식의 체면치례다.

해서 내 어릴 때는 어른들과 참으로 많이 다투었다.



鄕村의 풍습이 이와같았으니 주막은 당연히 동리 속으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강가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집을 지키는 주모는 사람이

아닌 不可觸 賤民으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 기억에 아마도 주막을 지키는 주모는 인간이하로 당연히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이야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오니 농촌체험마을로 바꾸겠다고들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주민들은 삼강서원이나 삼강강당 대신에 풍양면 삼강리가

주막으로 알려지는데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랫동안 유고적 삶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몸에 밴

유교적 전통이 어디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있겠는가?



(2) 三江書院과 三江講堂



주막을 돌아 안쪽으로 들어 가면 청주 정씨 집성촌인 풍양면 삼강리가 나온다. 마을에는 '丹心歌'로 유명한 고려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와 영남학파의

거두 퇴계 이황 및 임진왜란의 영웅 서애 유성룡을 배향한 삼강서원이 있고,

또 마을의 동쪽에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올곧은 선비들을 길러 낸 삼강강당이 있다. 우리 마을에 있는 龍宮佳野講堂(그래서 우리 마을 명칭이

講堂이다)이 龍宮인근의 인재배출 장소였다면, 이곳은 풍양인근의 인재배출장소였다.



서원부원군 정탁의 아들로 柳西厓, 鄭寒岡 밑에서 사사하여 경사와 성리학에 정통했고, 특히 필법이 탁월해 초서의 대가로 존경받았던 학자로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와 후진 양성에 힘썼던 대학자 淸風子 鄭允穆(1571 ~ 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

바로 삼강강당이다.



이곳에 걸려 있는 '百世淸風(백세동안 사표가 될만한 절의라는 뜻)'이라고 쓴 현판글씨는 한치의 막힘도없이 그침없으며 기운찬데, 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 속까지 시원하면서 맑아짐을 느낀다. 이 글씨는 선조 22년(1589년) 정윤목이 부틴 정탁을 따라서 중국을 갔을 때 절의를 지키기 위해서 벼슬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고사리르 캐먹으며 살다가 죽은 백의숙제의 묘를 참배 후 베껴온 것이라 한다. 일찍이 그는 국참 이찬의 담벽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 붙였던 적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곳에 진을 치다가 그 글씨를 보고는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들돌



옛 날 이곳 청년들의 체력단련을 하기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던 50kg무게의 둥근 들돌이 회하나무 아래에 있는데, 후일 물류가

빈번해지면서 인부들의 품삯을 정하기 위한 체력측정용으로 변질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시험삼아 들어보니 내 힘으론 역부족이다.





오른쪽이 원래의 삼강주막..

하지만 원 건물을 없어지고 그 자리엔 최근 새로 지은 초가가 자리잡고 있다.

왼쪽은 원두막들이고, 그 바로 옆 건물들이 보부상들 숙소라고 한다.





삼강주막 안내문이

말없이 흘러간 110여 년이라는 긴 전통적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주막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500년쯤 된 느티나무에는

그 긴 세월의 그늘들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울어도 눈물 흐르지 않을 인고의 세월을 딛고서...





강을 바라보고 있는 이쪽이

마루와 부엌이 달려 있는 걸 보면 사실은 전면인데,

무슨연유에선지

지금은 뒷마당이 되어버렸다.







初夏의 무더운 여름기운이 묻어 있는 낙동강은

거대한 한 마리 龍처럼 굽이쳐 누워있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나그네의 얼굴을 스쳐가면서

고즈넉한 방죽 길을 쓸고선 사라진다.





주막문에 써놓은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똑같을 터,

보다시피 그 때나 지금이나

값이 싸다.

하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세 아줌마에게선

그 옛 날 주모가 선비들에게 보여 주었던

옛 날의 따뜻한 인심보다는

차가운 세속의 내음이 가득 묻어있다.



주모는 어디가고

모든게 다 셀프서비스다.

그것도 한 참을 줄서서 기다려야만 받아 갈수 있는...







그래도..



누군가는 삿갓 쓴 시인이 되어.

늘 그곳에 머무르고 있나보다.





세월이 흘러도..

낮에 흐르는 빛살들 사이로..

그들의 값싼 낭만들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3000원짜리 찌짐과 2000원짜리 두부...

진다지 시골 막걸리 한주전자에 시름과 번민을 묻는다....

파란 배춧잎 사이로..


잊지못할 시름들이 모두 물처럼 흘러 떠내려 간다.

도도하게 흐르는 삼강의 저 강물을 따라서.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가림막..

불타는 정지에는..

그들의 사치스런 굶주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식욕이 넘쳐흐르고..



옛 선비들도 이랬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몰려온다.





떡메에

짓이겨지는 건...내 여린 기억의 편린들..

어릴적 추억들과 함께..

나머지 방엔 냉장고 한대에 그나마 찾아들 손님들에게 내어 놓을 주류나 음료 상자들이 차지 하고 있다.


사진 속의 모습은 원래의 주막모습이다. 청주정씨 집성촌에서 유일한 타성받이인 유옥연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지키고있었던

삼강주막의 모습이다.




하늘을 보고 웃는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삶의 그늘 아래서...

차라리 웃어버린다..





장안사로 오르는

산으로 가는 길 가엔 늘 그렇듯이

녹음이 무성하고.

빈 길 어느 곳에선..

우리네 버려진 속알들이 널부르져 뒹군다...





그들에겐 잊지 못 할 추억일 것이고.

모두에겐 견디지 못 할 숨결이었지만,

언제나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듯이

또 그렇게 흘러간다.







3. 회룡포를 굽어보는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長安寺,



산사엔..

언제나 그렇듯이

늘 신들이 산다..

우리 곁에 있는 萬神들이..





그가 흘려놓은 종루엔

멈춘 기억의 편린들만이

말라버린 갈댓닢처럼 흩어져 누워있다.





감아 돌아 흐르는 저 물결을 보면서,

속세의 먼지들을 훌훌 떨어버리자.



이곳이 바로 그토록 찾아 헤메던 彼岸이니....

이곳에 오르면 오래도록 편안해 질터

그래서 이름도 長安寺다.










물돌이 洞 회룡포 마을

그 옛 날 육이오 땐 우리 마을 사람들의 피난처였고

지금은 관광지가 된 곳!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자연의 간단한 이치를 예서 다시 보나니....



찾아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점촌.함창 I.C에서 내려가서 문경에서 예천방향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산양면 사무소 소재지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풍양방면으로 가는 59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10분 정도 가면 새로 건설된 큰 다리인 삼강교를 건너자 마자 삼강주막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맛 집



삼강주막에서 묵, 두부, 배추전, 동동주 등 간단한 요기를 할 수가 있고,

예천의 유명한 삼우를 맛볼려면 읍 내 참우촌(054 - 655 - 4288)을 찾아가면 되고,

또 전국에 소문난 박달순대와 순대국밥 및 용궁의 특산물인 오징어불고기를 맛 볼려면 용궁읍내에 있는 단골식당이나

'박달순대(054 - 652 - 0522)'집을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석송령이 있는 석송면으로 가면 '청포묵과 흑두부(054 - 654 - 8792)'에서 묵 탕평채 등의 별미가 기다린다.



기타



1박2일에서 이승기, MC몽, 은지원이 참기를 짜간 시장제유소는 순대국밥집이 있는 시장 안에, 그리고 강호동, 김C, 이수근이 참기를을

짜간 동부제유소(054 - 652 - 7788)는 큰 길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