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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발렌타인데이 유감

14일이면 영국 초콜릿회사가 상술로 시작한 발렌타인데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입에 넣으면 사르르녹는  초콜릿이다.

이 초콜릿에는 항상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데 바로

'예나 지금이나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의 사치품, 수 천년 동안 하층계급의 고된 노동에 의해 채워졌던 지배계급의 갈망의 대상'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중앙아메리카의 올메크족이 야생 카카오를 가공해 옥수수와 섞어 먹음으로서 시작된 초콜릿은 16세기 아스텍문명을 정복한 에스파냐의 코르난테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유럽으로 전해졌다.

 

중미에서도 '원기를 돋우는 고급식품'으로 인식되어 왕과 귀족들만 즐기던 '카카오의 물'을 뜻하는 '카카후아틀'은 단번에 유럽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 잡았고 이과정에서 '초코아틀'로 이름이 바뀌었다.

 

특히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로 소문난 퐁파두르부인이 당시 최음제로 알려진 카카오를 자신의 성기능장애 치료제로 사용하다가 초콜릿중독자가 되면서 수 많은 상류층부녀자들이 애용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늘어나자 포르투갈은 카카오재배를 위해 알골라에서 300만명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중미로 수출했는데, 형식은 카카오 농장의 일꾼으로 계약되어 있지만, 사실상의 노예로 팔렸던 것이다.

 

실상 18세기 유럽의 초콜릿하우스가 커피하우스와 더불어 근대 계몽사상의 요람이 되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부르짓던 '자유', '인권', '정의'의 이면에는 초콜릿과 커피농장에서 일했던 수 많은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자유,인권,정의를 논하던 이들 계몽사상가들이 토론하면서 마시던 초콜릿과 커피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중미로 팔려온 이들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산물이였던 셈인데, 이것도 모르면서 그들은 소리높여 게몽사상을 외쳤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같은 현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자유와 정의 및 인권을 외치는 현재의 그들도 모두 노예라고 불리지는 않는 노예아닌 실상의 노예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커피와 초콜릿과 와인을 즐기고 마시면서 아무것도 모른체 외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초콜릿 생산 현장을 보면 현재라고 별반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카카오 원두의 절반 가량을 생산하고 있는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는 세계에서 외채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 1989년 IMF 구조조정이라는 극약처방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하루종일 중노동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어느정도인가 하면, 초콜릿 농장을 다룬 다쿠멘터리에 출연한 코트디부아르 어린이가 "여러분은 내 살을 먹고 있다"고 절규할 정도다. 하지만 음양의 이치상 누군가 고생하면 그만큼 누군가는 이득을 보는 법이다. 따라서 이 어린이와는 정반대로 초콜릿을 생산판매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유래없는 정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는 유기농산물 붐과 공정무역 붐을 타고 더욱 더 기승을 부린다.

 

유기농붐에 편승하여 공정무역라벨까지 붙은 '마야골드'라는 명품유기농 제품으로 이름난 영국의 그린 앤 블랙스사의 판 초콜릿은 개당 1.6파운드라는 초고가에 팔리고 있지만, 그 원료를 생산하는 중미의 벨리즈 농민들에게는 그 4%도 안되는 6펜스가 돌아갈 뿐이다.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소비의 궁극적 목적이 개발도상국 농민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에 이런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돌아오는 아시아나 기내에서 산 고다비 초롤릿이 20개들이 1박스에 29불, 길리안 32개들이 1박스에 23불, 프랠리네스 27개들이 1박스에 22불이니 얼마나 비싼가 말이다. 그런데도 이들 제품의 원료생산자에게는 4%도 채 되지 못하는 돈이 돌아간다고 하니 이들 초콜릿 생산자들이 얼마나 많은 폭리를 취하는지가 가늠된다.

 

초콜릿 판패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군납까지 하였으니,

지난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의 허쉬사가 초콜릿이 고열량 식품이란 점을 부각시켜서 미정부를 설득하여 초콜릿으로 만든 '초코바'를 전투식량으로 납품하여 초호황을 맞았다고 하니 참 기가막힐 일이다.

 

오는 2월 14일 국적도 모르는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선물할 때,

초콜릿을 선물하기 전에 한 번 쯤 '카카오를 따는 피멍든 어린 고사리 손'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련지?

 

이는 비단 초콜릿뿐만이 아니라

'바나나', '커피', '와인' 도 동일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