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미국에 사는 형수인지 제수씨가 Londonderry라는 노래의 악보를 보내 주었다.
한 번도 아일랜드에 가본 적이 없는 웨덜리가 만든 노래이지만 이 노래는 아일랜드의 국가(國歌)로
Danny Boy가 소년이므로 사람들은 이 노래를 여인이 남자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모님이 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전쟁터로 간 아들,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flowers are dying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오, 대니 보이여, 산골짜기로부터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있구나. 여름은 가고 꽃들은 지는데 너는 떠나가고 나는 남아야하는구나.) But come y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Ti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그러나 초원에 여름이 오거든 골짜기가 고요해지고 흰눈이 쌓이거든 그 땐 돌아오너라. 나는 밝은 날에나 어둔 날에나 이 곳에 있으련다. 오, 대니보이 내 사랑아.)
학창시절에 배웠던 게
" 아일랜드 런던데리 지방의 민요 "
. Danny Boy는 북아일랜드 항구 도시 런던데리에서 전해 지는 민요 '런던데리의 노래 Londonderry Air' 가 원곡으로 1855년 조지 페트리라는 전통민요 수집가 가 발행한 'Ancient Music of Ireland'에 수록됐다. 여인으로부터 채록했는데 명확한 제목을 알지 못하자 그녀의 거주지인 런던데리의 이름을 붙여 'Londonderry Air'라는 제목을 부쳤다고 한다. 이란 뜻의 데리(derry)는 1604년에 런던의 통치구로 승인 되면서 런던데리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는데 1604년부터 8년 이어 1688년에는 105 일간의 시민전쟁을 치른 격전지다. 이 같은 전란에 휩싸였던 도시에서 발생했던 민족상잔의 비극이 구전돼 왔다고 한다.
꿈하게 된 것은 영국의 변호사 겸 작곡가, 라디오 진행자였던 프레드릭 에드워드 웨덜리(Frederick Edward Weatherly, 1848~1929)의 공이 컸다. 안타까워 부르는 이별 노래 였으나 그가 이전에 전쟁터로 어린 아들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비통한 처지를 묘사한 노랫말로 작사해둔 곡을 우연히 미국에 살고 있던 친척이 전달해준 'Londonderry Air'라는 곡을 입수하고는 자기가 이미 써놓은 'Danny Boy'의 노랫을 'Londonderry Air'에 대입시켜 1913년 드디어 불후의 명곡인 'Danny Boy'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됐다고 한다. 이 전사한줄도 모르고 아들을 기다리다가 끝내 숨을 거둔다는 어머니의 사랑 노랫말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슬픔이 깔려있는 노래이다. . ."오 사랑하는 아들 대니야, 는 노랫말로 개사된 '대니 보이' 중 '피리 소리'는 목동이 부는 것이 아니라 영국 군대의 백 파이프 고적대가 전쟁터에서 진군 을 독려하는 멜로디로 쓰였다. 묻어 저승에서나마 못 다한 모자의 정을 나누자는 애처로운 가사를 담고 있다. 를 불러 유명해졌다. 또한 수많은 가수가 노래 했기에 가수에 따라 약간씩 가사를 달리 노래하나 그 본뜻은 같다. 몇곡 선정 해서 소개합니다. < Danny Boy / Bagpipes 연주 >
♬ Danny Boy (아 목동아) ♪
Oh Danny Boy, the pipes, the
" Danny Boy "
< 아 목동아 / tenor 김화용 > < Danny Boy / Sil Aus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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