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Priority/ 생존의 치성
이 전염병 시련 속에서 내 인생의 우선 사항(priority)이 무엇인 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삶에서 이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토록 불확실한 모든 현실 속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할 것 같으며, 나 또한 그런 생각에 초점이 모여지곤 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긴 수난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에 아마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보다 내 생각에는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더 강하지 않나 싶다. 유난히 많았던 기근과 전쟁, 혼란과 위험 속에서는 생존의 투쟁이 치열하며 살기 위한 긴장이 강렬해지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정신적인 불안감에 휩싸여 우울증에 걸리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분투에 더 정신이 없어서 소위 선진국이라는 부유하고 비교적 편안한 사회보다는 훨씬 정신적 긴장감이 강해져서 ‘빨리 빨리’와 같은 의식 구조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이 긴 역사에 종교성이 민감하다고 도 말하는데, 그것도 서구 사회가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말하는 그것보다는 살아남으려는 열망[yearning to survive)으로부터 강하게 기도하고 추구하는 수단으로 종교에 더 깊이 심취하고 실행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하고 극기 하면서 더욱 매달리는 열성적 염원이 강한 것 같다. 불교에서 100일 기도, 한국 개신 교회가 특별히 시작해낸 새벽 기도의 열성, 금식 기도, 철야기도 같은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나는 여긴다. 매일 아침 새벽에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그것도 1년 내내, 심지어 수년 동안 그런 관습을 실천하는 이들도 많았다. 금요일 저녁마다 철야 기도회를 하고, 금식도 1주일, 심지어 40일까지 정말로 곡기(穀氣)를 끊고 기도하다가 쓰러지며 극단적으로는 죽기도 하는 현상이 한국 말고 어디에 일어나던가?
서양 사회의 영성은 보다 더 영적인 생각, 곧 명상(瞑想)과 같은 내면세계의 정신 화(spiritualization)라면 우리는 영적 내면 화에 한층 더하여 악착 같이 목표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하고자 하고 손에 확보하려는 것처럼 눈에 보이게 무엇을 구체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노력의 행위와 같은 것 말이다. 서양 방식의 영성은 몸과 마음을 내면의 정신 화를 통하여 안정하고 긴장으로부터 진정 시키며 물리적 세상에서 정신적인 사념의 경지로 들어가서 영적인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자 하는 훈련 같다. 그것은 곧 긴장과 불안감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디프레션에서 해방되므로 정신적 안정감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공헌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성의 훈련은 정신 건강에 유익한 혜택을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는 불치의 병도 고쳐야 하고, 꼭 성공하도록, 일반적으로 대학에 내 자녀가 합격하도록 해야 하는 강박감으로 치성(致誠)을 드리지 않던가? 그런 현상 역시 한국 말고 어느 사회에서 입학 시험 시즌에 발생하던가? 그런데 이제 한국인들이 경제적 풍요로 인하여서 훨씬 덜 종교적이 되었다. 이 코로나의 위기에도 기도하러 몰려가지 않는 건 어쩜인가? 감염 때문에 모이지 못하는 이유 만은 아닌 것 같으니.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는 생존보다는 다른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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