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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어정칠월/ 烏免怱怱

어정칠월/ 烏免怱怱


어정칠월은 친근했던 우리 세시(歲時) 표현이었다. 오토(烏免)는 까마귀와 토끼로, 동양 고대 전설에 까마귀는 태양을, 토끼는 달이니 해와 달, 곧 나달도 빨리 간다는 말이 오토총총(烏免悤悤)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의 일손이 느슨해진 음력 7월은 농부들에겐 한숨 돌리는 시기였다. 세 번씩이나 무논에 엎드려 무더운 한여름 비 오듯 땀을 흘리던 농사일의 절정이 세벌메기에서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고 바쁜 중에도 세월은 또 총총거리며 빨리도 흘러갔고 어느덧 어정칠월도 다 지나간다.
지금이야 논메기라는 자체가 없어졌으니 실감나지 않지만 무덥고 소나기도 뿌리는 논들에서 구성지게 농부가를 부르며 막걸리 기운에 논 바닥을 휘젓던 옛 모습, 그 과도기를 지켜보았던 시골 출신들에게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해 농사일 그런대로 가꾸었고 가을걷이까지 기다리면 되었다. 식힌 날씨에 기쁘게 땀 흘린 논들을 오가며 선들바람에 푸른 들판 설렁설렁 살피다가 보니, 아 어느덧 어정어정 7월이 넘어갔다네. 그러나 코비드-19에 델타 변종까지 우리를 괴롭힌 금년의 음력 7월은 여전히 지루하고도 괴로웠다. 농가엔 저임금의 외국 근로자들이 코로나로 줄어들었고, 소규모 자영업자들마저 세균 감염 통제로 여간 타격이 크지 않았으니 속을 태운 여름이 아니었나. 그래도 오토의 세월은 총총 쫓아갔네.
밤 모기 낮 파리에 시달리던 정자 그늘 선비들도 혹서(酷暑)에서 풀려나면서 책을 끌어당겼고 추풍가절(秋風佳節)엔 학문이 익어가지 않았던가. 당(唐)나라 문장가 한유(韓愈)도 가을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 말했다. 북송(北宋) 5현(五賢)의 하나로 시호를 따라 소강절(邵康節) 선생이라고 소학과 명심보감에도 나오는 소옹(邵雍/1011-1077) 역시 여지(勵志)에 독려했으니[二月杏花八月桂, 三更燈火五更鷄], “이월의 살구 꽃 8월의 계수나무 꽃 가장 아름답듯, 밤중까지 등불 돋우어 책을 읽고 새벽 닭소리에 즉시 일어나라”는 뜻이다. 곧 늦게 자면서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새벽에 일찍 또 일어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을 간략히 ‘밤중 등불, 새벽 닭 소리/ 三更火, 五更鷄’라고도 한다. 옛날 시간 단위의 3경은 자시(子時)로 지금의 밤 12시쯤이고, 5경은 인시(寅時)로 새벽 4시 전후이니 밤늦게 첫 새벽 일어나 공부하라고. 독한 세균에 시달렸던 여름이었지만 이제 학생과 공부하는 이는 책을 가까이하고, 다시 일터로 나아가는 이는 서늘한 가을에 새 기운을 내라네. 구름 걷혀 날 맑으니 시원한 푸른 하늘도 높고, 마소[牛馬]도 살찌는 이 좋은 절기 새 힘을 내야지. 음력 7월 그믐, 옛 말의 어정칠월도 이제 막 지나간다. 추석이 있는 음력 8월엔 한가위, 달만한 희망과 기쁨이 모두에게 가득히 안겨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