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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9.28 서울 수복

9.28 서울 수복(收復)
1950년 6.25전쟁으로 서울이 3개월 동안 북한 공산당에 점령 당하였으니 그해 6월 28일부터 9월 27일까지였다. 6월 25일 새벽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기습 공격으로 3일 만에 대한민국은 서울을 내주고 말았다. 부산을 남겨 놓고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으니, 미국이 개입하여 유엔군과 함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함으로서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 북한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마침내 9월 16일부터 서울 탈환 작전으로 전환하고서 미 제10군단이 서울의 연희동과 마포와 남산의 세 방면으로 공격하면서 서울의 시가전으로 접전하면서 9월 28일까지 완전히 북한 공산군을 몰아내고 서울을 탈환하였다.
동남쪽 구석의 부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공산당에 점령 당하였는데, 다행히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의 현명한 지휘 아래 세상이 예상 못한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한국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로 인한 사기는 북한의 속전속결의 공산화 계획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은 다시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어서 서울 수복은 지리멸렬하던 국군에게 사기를 진작 하였고, 반대로 북한인민군에게는 결정적인 사기 저하를 촉발하였던 쾌거였다. 이로서 9월 29일에는 즉각적으로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일본 도쿄에서 김포 비행장에 도착하고, 부산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곧 이어 김포 비행장을 거쳐 서울로 입성하여 그날 낮 12시에 서울 환도식(還都式)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미군 제1해병 사단과 제 7사단이 집중 공중 폭격의 엄호를 받으면서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한 전투였다. 한국 해병대가 비록 전투 경험이나 장비조차 미약한 상태였지만 한국 해병 제1대대를 앞장 세워 서울 탈환의 주 공격 부대로 미군이 지정했던 것은 전략보다는 한국 국민의 사기를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심리적 계산이었다고 한다. 막강한 미군과 함께 우리 해병1대대가 한강을 건너 북한군의 저항을 극복하므로 사기가 높아졌다. 제1선의 한국 해병 대대가 미국 제5해병연대와 함께 9월 21일에 신촌 일대에서 북한군의 저항을 무찔러 도주하게 만들었으니 전세(戰勢)는 기울고 며칠에 걸쳐 서울을 탈환하였다. 3개월을 잃었다가 다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렸으니 그 감개가 어떠 하였으랴. 바로 71년 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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