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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미나리 정성

미나리 정성/ 芹曝之忱


근폭지침, ‘미나리와 햇볕의 정성’이란 말로, 우리의 옛 사람들은 윗사람이나 임금에게 선물을 바칠 때 근폭(芹曝), 근성(芹誠), 헌근(獻芹)이라고 표현해왔다. 미나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정성, 햇볕 같은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드리는 성의라는 뜻이다. 그것은 옛날 송(宋)나라에 가난한 시골 사람이 늘 누더기 만을 입고 추운 겨울을 지냈는데, 봄이 되자 따뜻한 햇볕이 등을 쬐면서 그 따뜻함이 너무 나도 좋아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내 등을 덥히는 따스한 이 부일지훤(負日之暄)을 누가 알겠소! 이 햇볕을 우리 임금님께 바친다면 큰 상(賞)을 내리지 않겠소?”
같은 마을의 한 부자가 그 가난한 농부에게 말했다, “옛날에 미나리를 아주 좋아했던 이가 그 기막힌 맛에 반하여 부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부자가 미나리를 먹고 배탈이 났다고 하오!” 세상에 미나리밖에 모르는 사람은 그게 천하에 제일 맛있는 줄로 알았지만, 부자는 온갖 좋은 음식을 다 먹는데 그게 무슨 별미이겠는가? 겨울에도 여름처럼 얇은 옷을 입고 호화 주택과 더울 정도의 난방 속에 사는 부자에게 잔등에 쬐는 햇볕이 뭐 그리 따스하겠는가? 그래도 가난한 시골 사람에게는 세상에 그 따뜻한 햇볕 같은 것은 더 없는 기쁨이었으니 그 좋은 것을 어찌 임금님께 바치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 고사(故事)로 말미암아 ‘미나리와 같은 하찮은 것이지만 성의로 드립니다.’라는 뜻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근경(芹敬)’이라고 편지나 선물에 그렇게 쓰고 또 표현해왔다.
열자(列子 楊朱)에 나오는 고사(故事)이다. 가난하지만 갸륵한 정성이었으니 그것이 미나리의 정성이며, 따뜻한 햇볕의 충심이 아니랴! 한문에는 종종 ‘등을 굽는 기쁨과 맛있는 미나리(快炙背而美芹子)라고 하며, 같은 뜻의 ’등을 쬐는 행복과 미나리의 아름다운 맛(快曝背而美芹子)‘라고 도 표현한다. 우리나라 옛글에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근폭지침(芹曝之忱), 근폭지성(芹曝之誠), 근폭지헌(芹曝之獻) 등이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적갑(赤甲) 시에도 “등을 굽는 것 임금님께 드릴만 하고 맛있는 미나리 그 시골 사람에게서 나왔네(炙背可以獻天子/ 美芹由來知野人)”라고 읊었다. 정말로 가난한 시골 농부 입에는 싱싱한 여름 미나리가 얼마나 맛이 있었으며, 옷 없던 농부에게는 겨울이 그토록 추웠지만 봄 날 따뜻한 햇볕에 등을 구웠을 때의 행복감을 그 누가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어찌 지극한 정성이 아닐 수 있으랴! 누군가 에게 ‘조그만 정성 드림’이란 뜻으로 ‘미근(微芹),’ 또는 ‘헌폭(獻曝)’이라고 쓰면 좋겠지요? 당신의 미나리 정성과 등을 굽는 햇볕을 뉘게 드리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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