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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중양절

重陽節/ 구구절에 양기를


음력 9월 9일은 9자가 둘 겹쳤다 해서 구구절(九九節), 거듭된 9라고 중구(重九), 9의 양기가 중첩된 중양절(重陽節이다. 우리나라와 일본과 월남 등지의 동방에서 지켜오는 중국서 유래된 오랜 명절이었지만 지금은 대개 잊어버린 채 약간의 전통 유습에 남아 있어 제사나 옛 풍속 모임이 있는 정도이다. 중양절은 무슨 까닭인가? 양수(陽數)의 중첩 때문이었다. 고대에 동양인은 양(陽)은 양기(陽氣)를 가져다주고, 그것도 겹[double]으로 온다면 더욱 충만한 축복으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는 1월 1일이요, 삼월 삼짇날은 3월 3일, 5월 5일은 단오(端午), 칠석(七夕)은 7월 7일, 중양절은 9월 9일이 아닌가! 그 양수의 1, 3, 5. 7, 9 다섯 개의 모든 양수 중에서도 가장 큰 9는 더욱 좋은 양기를 상징하였으니 가장 높은 하늘이 구천(九天), 구소(九霄)요, 가장 깊은 명계(冥界)가 구천(九泉)이며, 극단의 죽을 고비는 구사(九死), 깊고 깊은 구중 궁궐(九重宮闕)은 아무도 일반인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구금(九禁)의 대궐이며, 수도 없이 꼬불 꼬불 고갯길은 구절(九折)이고, 아주 먼 나라는 9가지 말로 통역하고 번역하여 의사를 소통한다는 구역(九譯)이라 했다. 그 깊고 그윽하며 한없이 큰 양기의 축복이 그것도 이중으로 겹쳤으니 얼마나 좋은 숫자인가? 모든 양수의 겹친 날이 다 명절이지만 그 중에 중구(重九)는 더욱 좋다. 이런 날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겠는가!
날렵한 제비들도 멀리 강남으로 날아가고 긴 동면(冬眠)을 위하여 개구리 뱀들은 깊이 땅속으로 숨어드는 때, 중국의 일부의 민속으로는 산에 올라가 슈유(茱萸)를 머리에 꽂는 중양절 풍습은 한 전설로 유래한 것이다. 액을 물리친다는 민속이지만, 두보의 시구(詩句)에도 등장하니 당(唐)나라 때에 이미 있던 풍속이었다. “명년 이 모임에는 누가 건강할지 아는 가/ 취하여 수유 가지 꺾어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 음기가 오르는 가을에 인생 황혼에는 석양을 바라보며 건강을 축수하는 마음이 어찌 아니 들겠는가. 국화주가 장수와 건강에 좋다는 옛 사람들의 기대가 그 속에 밴 의미일 것이다. 중구(重九)에 건강을 국화주로 달랬으니까.
“구월 구일에 아으 약이라 먹는 황화(黃花),” 우리 고려 가요가 있었으니 예부터 노란 국화, 어쩌면 야생의 구절초와 같은 꽃의 약효도 믿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국화가 압권인 중양절이므로 국화전(菊花煎)을 부치고 화채(花菜)나 국화주를 마신다. 국화는 찬바람과 서리에도 정절을 지키는 지사(志士)의 정신을 대표하는 절개의 꽃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중양절에는 등고회(登高會)로 산으로 올라가며, 문사(文士)와 선비들은 모여서 시회(詩會)를 열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마음껏 풍월(風月)을 즐겼다. 중국에선 지금 중양절을 현대화 하는 뜻에서 경로절로 하여 장수를 기원하여 노인에 대한 관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네. 우리 사회도 중양절을 거의 잊었으나 노년층에 옛 얘기를 간직하고 한시회(漢詩會)나 제사 같은 데에 조금 남았으니 노인들이 즐기는 명절일 수도 있다. 양수인 3의 세 겹인 9자가 포갰으니 이 양기 가득한 날에 노령의 기운을 다시 돋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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