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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Suddenly Shouting / 순간의 고함

Suddenly Shouting/ 순간의 고함


안국역 가까이 천도교당(天道敎堂) 옆을 걷는데 묘령(妙齡)의 여자가 작은 튜브 하나를 지고 가던 배낭에서 떨어뜨리고 지나가네. 순간적으로 소리쳐서 알려주려는 데 뭐라고 부를까? 얼핏 학생인가, 아주머니는 아닌 것 같고. 여보시오, 하기엔 겸연쩍기에 “이봐요!” 했다. 반대 방향으로 걷자 간격이 멀어져서 뒤쪽에 주의를 돌리지 않네. 그 표현을 못 들었던 지, 아니면 자기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더 크게 고함(高喊)을 질렀다, 이번에는 “아가씨!” 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가 약간 민망했지만 순간적으로 혹시 그게 필요한 무슨 약일지도 모르니까. 그 말이 좋아서 였는지, 이봐요 라는 말보다는 아가씨가 자기에게 합당하다고 여겼을까? 아가씨란 소리에 돌아오기에 나는 그저 손가락으로 그 튜브만 가리키고 내 갈 길을 계속했을 뿐이다.
급할 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소리가 평소의 생각과 소신(所信)의 발현(發顯)이라고 들 말한다. 노망(老妄)이나 노인 치매(癡呆) 환자가 되면 점잖게 보이던 이도 못된 욕이 나오고 겉보기와는 달리 엉뚱하다고도 한다. 그게 진짜 내면의 인격일까? 도무지 욕을 해본 적도 없고 머릿속에 메모리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순간적으로 욕이 그런 경우에 생성되어 나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입력된 메모리가 급하게 튀어나온다면 내 컴퓨터에 이봐요 라는 말이 잘 저장되었나 보다. 다음 순간은 아가씨였으니 그건 세컨드 초이스(the second choice)로 저장되어 있었단 말인가. 급하면 엄마, 아빠를 부르고 죽을 위기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말이 하느님이라고 한다. 천도교의 교조(敎祖)인 최재우(水雲 崔濟愚/ 1824-1864)가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 ) 가사 집에 음식물 잘못 먹고 갑자기 배 아플 때는 하느님 부르기가 급하더라는 대목이 나온다, ‘수토복통(水土腹痛) 앓을 적에 임사호천(臨死呼天) 급하더라,’ ‘불시풍우(不時風雨) 원망해도 임사호천(臨死呼天) 아닐 런 가!’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 얼떨결에 상대방을 부를 대명사가 마땅치 않았다는 사실과 내 메모리에 저장된 어휘[vocabularies], 그리고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내 말이 진정한 나의 뜻과 인격이 곧바로 발현되는 가였다. 언어가 인격의 집이라면 그 집의 분위기가 밖으로 내보일 테니까. 아무래도 내가 배운 어휘가, 상식적인 추론 만으로도 내가 간직한 말들이 내 표현 속에 묻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많은 어휘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언어와 단순히 기본적인 어휘 만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경우만 비교해도 이해할 수가 있다. 예쁜 말을, 좋은 말을 많이 입력하고 밑줄을 쳐둔다면 내 컴퓨터에서 말이 표출될 적에, 설사 순간적으로 나오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임사호주와 같은 종교적 예화는 더 논의를 해야겠지만 종교적 신념이 무의식중에 나올까? 오랜 종교인으로 살았던 이가 치매에 걸려서 아주 거친 말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니 반드시 그렇게 단정할 수야 있겠는가. 그래도 평소에 말과 생각의 실습이 아름답고 의미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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