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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六一居士 / 그가 즐긴 6가지

六一居士/ 그가 즐긴 6가지


취옹(醉翁) 구양수(歐陽脩/ 1007-1072)의 다른 호가 육일거사(六一居士)이고 시호가 문충(文忠)인데, 그의 성씨는 구씨가 아니고 구양(歐陽)씨로 이름이 외자인 수(脩)이다. 지금의 사천성 금양(錦陽) 그의 시대에는 금주(錦州)라는 데서 태어나 호북성 수주(隨州)서 자라났는데,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해서 어머니가 모래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배웠다. 북송의 세 황제를 섬겼고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참지정사(參知政事)까지 지냈다. 범중엄(范仲淹)과 함께 새로운 정치 개혁을 겪으면서 당나라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이 제창한 고문 운동을 계승하려고 했다. 유명한 문장가로 소위 당송 8대가가 당나라 한유, 유종원, 그 자신과 그가 뽑고 추천한 증공(曾鞏)과 소순, 소식, 소철 삼 부자와 왕안석(王安石)이다. 그의 문장은 평이(平易)하고 청신하기로 이름이 났고, 신당서(新唐書) 등의 역사서를 저술하기도 한 학자였다. 시와 문장에 뛰어나 우리가 다 아는 다독, 다작, 다상량(多商量)이라는 글 짓기의 삼다론(三多論)이 그의 아이디어다. 조선의 선비들도 구양수 체라는 글씨체가 있음을 다 알았을 정도로 글씨에도 독보적 대가였다.
취옹이야 술을 좋아해 취한 듯, 깨는 듯 살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육일거사는 무엇인가? 젊었을 때야 그런 호가 어디에 어울렸겠는가? 취옹도 육일거사도 다 늙어서 인생을 살만큼 산 뒤에 만년(晩年)이 되어서 야 정말로 좋아하는 이름을 지어 자신을 드러낸 호가 아니었겠는가! 그가 늙어서 자기 곁에 늘 두고서 즐겼던 6가지를 골라 이름 하여 하나씩 다 가지고 즐기며 살았다는, 그렇게 누리며 살겠다는 뜻으로 육일거사라 했다. 독서를 일생 즐겼으니 지금처럼 정보가 풍성한 온갖 책들을 구할 수 없었던 지극히 제한된 옛날 세상에서 도서(圖書)란 보석처럼 귀하고 소중한 정보의 집적이었다. 책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부를 하고 정보를 확보하며 자유자재로 그 보화를 캐낼 수가 있었으니 그 얼마나 귀중한 자료이었겠나.
그리하여 그는 1만권의 책을 그 곁에 소장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한 가지요. 둘째로 그가 하고자 하는 금석문(金石文) 연구가 있었으니 고문(古文) 그 본래의 오리지널이 될 만한 순전한 옛 글이 쇠에 새기고 돌에 새긴 글들의 가치를 알고 자그마치 그 금석문의 책 1천 권을 소장 하였다는 금석문이 그의 두 번째로 소중한 것. 그리고 고대로부터 정서적이며 진실을 표출하는 예술인 음악이 영혼을 맑게 하고 즐겁게 하는 거문고 하나가 있었다. 설사 줄이 끊어졌다고 해도 거문고를 들고 있는 음악의 순수한 감성을 즐기는 매체인 거문고는 그에게도 소중하였다. 4번째는 정신을 집중하고 전략을 궁리하는 신선의 놀이 바둑판이 하나 있었다. 도락(道樂)이 없이는 인생의 멋이 무엇인가? 취미와 흥을 즐기는 놀이의 인생은 어린 아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장난감이 필요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섯 째가 빼놓을 수 없는 술 한 단지다. 그 위에 자기 자신인 구양수 늙은이 하나를 합쳐서 6가지, 하나하나를 합쳐서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했다는 것. 육일거사는 실로 멋지고도 보람찬 취옹의 삶이었다.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 육일시화(六一詩話), 거사집(居士集), 방대한 구양 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이 육일거사가 남긴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