晋扣山扉/ 은자의 삶
찬 서리에 코로나로 더욱 움츠린 세속의 혼란 속에서 동면(冬眠)의 동물들처럼 물러난 은자(隱者)들을 생각하게도 한다. 산비(山扉)는 산골 집을 가리키니 싸리나 나뭇가지로 엮은 소박한 사립 문인데,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을 초가집 삽짝이다. 그걸 또 신선의 집이라는 은유로 선비(仙扉)라고도 부른다. 진구산비(晉扣山扉)나 진고선비(進叩仙扉)도 같은 뜻으로 은자의 삶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진구(晉扣), 진고(進叩)가 ‘나아가서 두드림’이니 남의 문을 두드림 곧 찾아감이라, 시도하거나 추구(追求)한다는 의도를 뜻한다. 세속의 먼지를 등지고 조용한 산속으로 신선(神仙)처럼 사는 도인(道人)의 길이나 그런 삶을 찾아서 은자(隱者)가 되려는 뜻을 가진다는 표현이다. 2천년 이전 진시황(秦始皇)의 정치 탄압과 혹독한 강제 부역(賦役)에 시달려서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많이들 떠나서 외부의 시달림이 없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인생의 본질인 도(道)를 닦으며 자연과 함께 낙을 누리려 들 했다. 진시황 이전에도 물론, 그 이후 지금껏 수천 년 동안 그런 삶을 추구했던 소위 은사(隱士)나 처사(處士)들은 많았다. 상고(上古)의 신화시대였을 요(堯)임금도 피하여 산속으로 갔던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로부터 고대의 노 장자(老 莊子)도 그랬으니 그런 선망(羨望)은 인간 사회가 형성되면서 부터 생겨난 참 오래된 염원이었던 것 같다.
세상 어디 난리 없었던 나라가 쉽게 있을까 마는 한반도만큼 변란에 시달린 곳도 그렇게 많지는 못하리라. 그래서 글 읽은 선비들은 도참설(圖讖說)에 정감록(鄭鑑錄)까지 독파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려고 도 했지 않았나. 조선 말에 그로 인하여 소백, 속리, 계룡산 같은 데, 소위 10승지지(十勝之地)라는 데로 가솔(家率)을 이끌고 아예 깊은 곳에 이주하여 살기까지 했으니까. 지금의 절강성(浙江省)에 살았던 남송(南宋)과 원(元)나라 초의 일표 옹삼(一瓢 翁森)은 남송(南宋)이 멸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서 800명의 후학을 가르친 사람인데, 그의 이 시(詩) ‘주도사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지은 산골 집[訪朱道士不遇题山扉]'에 그 은자의 뜻을 잘 묘사했다. “느긋이 솔 아래 도사의 집 찾아갔는데/ 다만 은자의 집 문은 푸른 노을[깊은 산골]에 닫혀 만 있네./ 울 밑의 서릿발에 신 미끄러워/ 마음은 벌써 국화 시를 생각하네(閒來松下叩仙家/ 惟见山扉掩碧霞/ 步繞籬根霜屦滑/ 已將心事語黄花).”
이미 선선의 산속 사립문, 신선의 궁전이라는 신화적 푸른 노을(碧霞), 솔 아래와 국화 시(詩)가 다 은자의 세계, 시주(詩酒)로 자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도가적(道家的) 현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는가. 그것이 처사와 은자의 풍류였으니, 자신의 아이콘(icon)처럼 그렇게 호(號)를 지었던 포은(圃隱 鄭夢周/ 1338-1392), 목은(牧隱 李穡/ 1328-1396), 도은(陶隱 李崇仁/ 1347-1392) 등 고려 말 조선 초에 우리도 많이 들 그러했으며, 조선 말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은퇴 후에 조용히 향리(鄕里)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여생을 구가(求暇)하고 싶은, 노자와 장자나 옹삼 같은 삶이 현대에도 적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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