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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The Königsberg Clock/ 쾨닉스버그 클락

The Königsberg Clock/ 쾨닉스버그 클락

칸트의 시계란 말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날마다 정확한 시간에 산보를 해서 시계가 귀하던 그때 그곳 사람들은 그의 산보 하는 시간에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채 계몽주의 철학의 아버지가 되게 했던 거기. 독일이었기도 했던 땅, 옛날 프러시아(Prussia)의 한 작은 동네를 내가 한 번 밟아보려고 했던 게 그 때문이다.

지금은 거기를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라고 이름 한다. 발틱 해(Baltic Sea)의 부동항(不凍港)을 위해 소련이 해체될 적에도 러시아는 그곳 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이 얼어붙는 겨울이면 그들의 갈색 곰처럼 러시아의 항구도 동면(冬眠)에 들어야 해 항해도 정지 상태라서 얼지 않는 항구를 위해 그들은 300년 동안이나 그곳을 위해 싸워왔다 네. 지금도 가까스로 댕그러니 그 작은 곳을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육지에 갇힌 외딴 곳의 러시아 땅으로 남아있지만 나머지 세상은 칸트를 찾는 사람들 말고는 거길 아는 이도 극히 적다. 그렇지만 쾨닉스버그 클락은 많이들 기억하니, 칸트 때문이다.

살인마 코비드-19로 그만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되자, 3년 전 내가 발틱(Baltic) 서너 개 나라를 거쳐서 올 때 거길 들리지 않은 게 자못 아쉽기는 하다. 칸트가 아니라면 칼리닌그라드의 쾨닉스버그 시계인들 있기나 했겠는가. 이런 걸 두고 ‘발굽 없으면 말도 없다’는 속담을 인용할 수 있다. No hoof, no horse! 칸트 없으면 쾨닉스버그 시계도 없는 까닭이다. 땅이 있고서 야 사람이 살 수 있겠지만, 실상은 인물(人物)이 나고서 그 땅의 이름이 나는 법이니까. 퇴계(退溪 李滉)가 없었다면 안동(安東)의 도산(陶山)을 누가 기억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를 인도(印度)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영국 만큼이나 세익스피어가 이름났기 때문이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10여 척의 배를 가지고 왜적 함대 133척을 싸워 이겼기에 명량(鳴梁)이 세계의 해전 역사에 이름이 날 수 있었다. 거기 발틱해 연안의 아직도 칼리닌그라드의 ‘칸트의 시계’는 비록 러시아 땅에 지금 속했지만 그를 독일의 철학자로 세계가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잦아들거든 쾨니버그 클락을 찾아가서 임마누엘 칸트를 한 번 만나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