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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백리에 쌀을 지고 / 百里負米

백리에 쌀을 지고/ 百里負米

백리부미(百里負米)는 백 리 먼 길에 쌀을 지고 갔다는 말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한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致思)에 자로가 공자 앞에서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때는 땅을 가려서 쉬지를 않고, 집이 가난하여 부모를 섬길 때는 월급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합니다. 지난날 제[由]가 양친을 섬기던 때에는 늘 명아주와 콩잎 같은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부모님을 위하여 백 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습니다(負重涉遠 不擇地而休, 家貧親老 不擇祿而仕․ 昔者由也 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그토록 자로는 효자였다고 2천 수백 년 동안 알려져 온다. 그것을 대표하는 설명이 백리부미, 또는 자로부미(子路負米)라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남쪽의 초(楚)나라로 가서 관리가 되어, 수레가 100대나 되고 창고에 쌓아둔 쌀이 만 종(鍾)이나 되었으며 방석을 포개 놓고 앉아 솥을 늘어놓고 먹었는데, 명아주와 콩 잎을 먹고 부모님께 쌀을 지고 가기를 원했지만 다시 할 수는 없었습니다(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 우리가 지금 자동차를 두 세대 씩 가지고 있고, 양식 걱정이 조금도 없이 풍성하지만 오히려 나물 국을 먹고 잡곡 밥일망정 부모님 섬기던 그리움이 어이 지금 없겠는가? 백구과극(白駒過隙)처럼 세월은 빨라서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 질 아니하시니 요!

“마른 생선을 묶어 놓은 노끈이 어찌 얼마 못 가서 썩지 않겠습니까, 양친의 수명은 흰 망아지가 갑자기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갈 뿐입니다(枯魚銜索 幾何不蠹, 二親之壽 忽若過隙).” “공자가 말했다, ‘유야가 부모님을 섬긴 것은 가히 살아 계실 적에는 힘을 다하였고 돌아가시고는 생각하여 그리워함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孔子曰, ‘由也事親 可謂生事盡力 死事盡思者也’).” 가난하여 콩 잎과 명아주 나물로 봉양하던 때에는 귀한 쌀을 지고 100리를 날라 오던 고생도 행복했다는 자로의 고백이었다. 지금 엄청난 부요를 누리고 살지만 차라리 백 리에 쌀을 지고 가서 부모님을 다시 또 공양해 드리고 싶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이 계시지 아니하더라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쌀을 지고 갈 수 없는 한’이라고 부미지한(負米之恨)이라고 도 한다. 돌아가신 뒤에도 당신의 효성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