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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聖山明鏡 / 몽유 소설

聖山明鏡/ 몽유 소설

내가 처음 읽은 몽유 소설(夢遊小說)로는 대제학(大提學)까지 지낸 학자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 지은 구운몽(九雲夢)이다. 주인공 성진(性眞)과 8선녀와의 사랑과 각성을 그린 유교와 불교의 접목을 시도한 소설이었다. 몽유 소설이란 소설의 한 형식으로 꿈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내용으로 한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 최병헌(濯斯 崔炳憲)의 성산명경(聖山明鏡)도 같은 장르의 소설로 1912년 조선예수교서회에서 간행했다. 저자가 편집을 맡고 있던 한국 최초의 신학 연구지 신학 월보(神學月報)에 1907년부터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던 걸 재정리해 출판한 책이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성산(聖山)에서 씩씩한 고려국 청년 신천옹(信天翁)이라는 주인공이 진도(眞道)라는 유학 선비와 꿈속에서 먼저 만난다. 진도는 사서오경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달한 조선의 엘리트이니 동양 사상과 유교의 도리와 종교적 질문에 관하여 진지하게 토론한다. 주인공은 또 태백산의 난야암좌(蘭若庵座)로부터 내려온 불교도승 원각(圓覺)을 만나 역시 불교의 깊은 도리를 듣고 질문도 하면서 대답을 이어간다. 다음으로는 상산(商山)으로 올라가서 거기 속세를 떠난 사호(四皓) 중의 하나였던 동원공(東園公)의 불로초를 먹고 도사가 되었다는 백운(白雲)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신천옹을 중심으로 동서 종교들의 진리가 논란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신(神)과 우주의 창조, 구원과 내세의 문제와 신앙의 도리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 탁사는 이미 사서삼경에 통달한 선비요, 조선 말 대한제국 때에 하급 벼슬의 경력도 있는 당시의 높은 유학자의 실력과 유불선(儒佛仙)의 지식을 갖추었기에 논지는 확실하게 전개된다.

이 책은 저자의 뛰어난 시 문학적 언어 구사로 인하여 논란에 앞서 한시(漢詩) 한 편을 읊어 시작하면서 문학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그저 종교를 비교하는 논의만이 아니라, 동양 종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통하여 기독교의 토착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리하여 탁사를 한국 최초의 비교 종교 학자라 하고, 신학에서도 최초의 토착화 신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한국에 처음 복음을 전한 미국인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적 깊이에 처음부터 눈을 떴고 한글과 한국 문학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문서 선교를 위하여 영국의 잔 번연(John Bunyan/ 1628-1688)의 은유 소설(allegorical novel)인 천로 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을 번역하여 일찍부터 한국에 보급하였으니, 탁사도 그걸 성산명경의 방법적 모델로 삼았다. 동양의 오랜 몽유 소설의 형식과 서양의 은유 소설 ‘천로 역정’의 통합된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탁사의 종교 이해와 복음 전도의 길은 동양과 서양의 통합이었으니 배타적 관계가 아니었다. 맹자(孟子)의 진심(盡心)과 천성(天性)이 하나님이 내린 바탕인 것처럼 그것은 동서양을 망라한 같은 근원이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를 이루었다고 믿었다. 성산명경이라는 몽유 소설은 탁사의 신학을 총합한 민족과 민중을 위한 소설로 진리를 설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