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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Red Rouge/ 빨간 립스틱

Red Rouge/ 빨간 립스틱

어제 추수감사절을 보낸 바로 다음날인 오늘은 미국에서 ‘검은 금요일(Black Friday),' 1년 중 최고의 매상(買上)을 올리는 가장 큰 판매의 날이다. 풍요한 현대사회의 소비 성향은 행복을 위해, 자기 만족의 수단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는 자유를 누린다.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가질 때의 행복감처럼 소유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한다. 소비의 욕구가 경제를 이끌어 가며, 그것은 결국 삶의 가치 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 신나고, 더 아름다워지며, 더 편리하게 즐기며 만족하는 것이 결국 행복이라는 것 같다.

1979년 봄 시카고 다운타운(Chicago downtown)의 한길 보도를 처음 걷는데, 높은 마천루(摩天樓) 아래 한 건물 1층 창가에 앉은 윈도우로 나타난 할머니 하나가 내 눈에 클로즈업 되었다. 얼굴의 주름이 완연하고 손은 분명히 떨리면서 한 손엔 작은 손 거울을 들고서 한 손으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저절로 내 발걸음이 멈추어 서네. 한참을 서서 할머니의 구찌 베니[口紅] 바르는 모습을 내가 다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시 세계에서 온 정글 맨(jungle man)처럼 말이다. 1959년 시집갈 때 처음으로 누님이 립스틱을 바르는 걸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이래로 할머니의 빨간 립스틱(red lipstick)은 내 메모리에 찐 하게 각인되었다. 섣달 대목이나 검은 금요일의 쇼핑으로부터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더 예쁘고 더 행복해지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내가 생각했다. 지금이야 엄청난 양의 그 빨간 립스틱을 남자들이 빨아 먹겠지만 그게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다.

꼭 100년 전인 1921년에 아르칸사스 주의 노벨(Knobel, Arkansas)이라는 곳에서 펄 퍽슬리(Pearl Pugsley)라는 여고생이 강제로 조퇴(早退)를 당했다. 학교가 강제 귀가 시킨 이유가 고등학생이 립스틱을 발랐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반발했고, 사춘기의 딸을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권(人權)을 압박한 것이라면서 변호사를 사서 항변을 했다. 당시 그것은 전국적으로 '립스틱 전쟁(lipstick war)'이라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펄 퍽슬리 여고생은 유명한 여걸(女傑)이 되어 전국적으로 언론 인터뷰가 쇄도 했으니, 로스앤젤레스 활동사진에서는 당시에 주당(週當) 거금 $1,000의 제의를 했을 정도였다. 여자가 루주를 바를 권리가 있다는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이 고작 백 년 전이었다, 그것도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여성의 권리라며 그녀는 법정에서 부르짖었다, “나는 문제를 야기하려 던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여자는 가장 예쁘게 보일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은 더 예쁘고 더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그러기에 할머니라 할지라도 빨간 립스틱을 바를 수 있고 또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가질 권리 때문에 오늘도 끊임없이 장난감을, 온갖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