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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跬步千里/ 규보천리

跬步千里/ 규보천리

어느덧 마지막 달력을 넘기는 날이 되었네. 이 12월 한 달이면 또 새해를 맞을 테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신년을 준비해야지 않겠는가. 노령에 더욱 세월의 촉박(促迫) 감이 들지라도 더더욱 뚜벅 뚜벅 가야겠기에 오늘은 우보천리(牛步千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규보천리(跬步千里)로 제목을 삼았다. 이는 반 걸음 씩일지라도 차곡차곡 계속 만 한다면 천 리를 간다는 뜻이다. 작더라도 꾸준히 진행할 때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강조의 표현이다. 한 걸음은 원 스텝(One Step)이고 반 걸음은 해프 스텝(a half step)이다. 실상 우리가 한 걸음이라면 두 발로 걷는 우리의 다리가 양 발이 한 번 씩 나갔을 때가 된다. 오른발만 나아가면 실상은 반 걸음이니 한 발의 나아감이라는 규보(跬步)도 반 걸음이 아닌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우리 속담을 정약용(丁若鏞)의 이담속집(耳談續集)에 한역(漢譯)하기를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라고 했다. 노자(老子)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아름드리 나무는 작은 씨에서 자라 나오고, 아홉 층 돈대는 흙더미 겹쳐서 일어나며, 천 리의 행진은 발 아래서 시작한다(合抱之木生於毫末, 九層之臺起于累土, 千里之行始于足下)” 정약용이 노자를 아니 읽었으랴 마는 같은 범주의 맥락일지라도 그 뜻이 목표하는 바는 우리 속담과 노자의 강조하는 핵심이 조금 다른 것은 사실이다. 노자의 것은 만사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큰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이고, 우리 속담도 그런 의미가 포함되지마는 시작의 작음을 개의치 말고 작더라도 착수를 먼저 하라는 촉진에 강조를 둔 것이 아니겠는가.

규보천리는 우보천리(牛步千里)나 우보만리(牛步萬里)와 같은 원리다. ‘소 걸음이 천 리/ 만 리 간다.’는 것이 우보 천, 만 리이니까. 말이 달리는 것은 대개 우리가 빨리 간다고 생각하고, 소 걸음은 흔히 느림보 걸음이라고 우리가 이해한다. 뚜벅 뚜벅 소가 걸어가는 게 대개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말은 트로트(trot)라도 소보다는 빠르다. 갤럽핑(galoping)은 훨씬 더 빠르다. 소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고 는 뚜벅 뚜벅 걷는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도 쉬지 않고 오래토록 꾸준하면 마침내 먼 길을 간다는 것이 우보천리이다. 그런데 규보천리는 천천히 가는 대신 조금씩 가더라도 계속 가면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강조이니, 우보천리의 느린 속도에 비견하면 짧은 걸음걸이도 계속하면 멀리 갈 수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조금씩 가도 계속 나아가면 천 리를 간다는 말이고, 우보천리는 천천히 하는 속도라도 계속한다는 끈기에 강조를 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