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 What‘s Your Name?
오늘은 인권의 날로 기리기도 한다. 인간으로 한 번 세상에 태어났다면 천래적(天來的)으로 이 세상에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말이며, 그 한 인격은 존중되어야 함을 인식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 인권은 그 개인의 정체성인 이름이 고유한 인격 체이며 권리를 가지는 주체가 된다. 나는 내 이름과 함께 고유한 인권(人權)을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저마다 이름 하나 면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자호(字號)니, 아호(雅號)니, 당호(堂號)니, 실호(室號) 하면서 덕지덕지 자꾸 무슨 이름들을 지었는가? 관가에서는 작호(爵號), 민간에서는 택호(宅號), 죽은 뒤에도 시호(諡號)까지 붙였으니 하릴없이 이름만 기억하다 실상(實狀)은 다 잊어버리지 않겠는가? 온갖 지식 정보와 생활 용어가 날마다 쏟아져 나와서 외워야 할 명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데, 어느 천 년에 그 한 사람의 명칭을 다 기억하며, 그것도 짧은 인생에 언제 다 그 의미를 새기고 산단 말인가?
호(號)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 외에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스스로 지은 별명이니, 동양에서는 일찍이 그렇게 호로서 자신을 표출하였다. 마치 현대 말로 하자면 자기의 아이콘(icon)을 창작하여 남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면서 그 호로 불리어짐을 만족하며 즐거워했다. 많은 경우에 스스로 골라 짓지만 더러 는 남이 지어주기도 한다. 방랑 시인 김 삿갓은 필시 남들이 그렇게 불렀고, 또 스스로도 받아들여 인정한 그의 별호가 된 경우이니 그는 늘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양반 후손의 갈등과 사회적 윤리의 모순으로 재주가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科擧)에 나갈 수 없는 운명이라 반항과 염세적(厭世的) 태도로 인하여 56세로 죽을 때까지 조선 8도를 방랑하며 구름 따라 발길 따라 시를 읊으며 떠돌았던 그의 이미지가 그 호 속에 여실히 드러나고,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을 삼아 신고 하늘을 가리며 숨은 인생이라는 은유로 삿갓을 쓰고 살다가 갔던 풍류객이었다.
그래서 한문으로는 김립(金笠)이니 김 삿갓 그대로 이다. 실상 그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고, 그가 지은 다른 아호(雅號)에는 난고(蘭皐), 지상(芝祥), 이명(怡溟)도 있지만 대개는 ‘김삿갓’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 그게 그를 특정 짓는 기본의 호가 되었다. 그의 삿갓론(論)도 명쾌했다. “술에 취하면 걸어 놓고 꽃구경하고/ 흥이 오르면 벗어 들고 달 구경하며/ 속인들은 의관을 겉치레 체면치레로 쓰지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내사 아무 걱정이 없다네.” 조선 후기에 글씨로도 유명한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의 경우에는 우리가 아는 대로 추사(秋史), 예당(禮堂) 등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은 아호(雅號)를 지닌 인물로 자그마치 503개로 알려졌다. 이름은 이토록 자신의 인권과 인격을 표출하는 자기 표상[identity]이다. 그런 사람, 그런 인품의 특성이므로 소중하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자 하는 당신의 인권과 인격의 특성이 그것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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