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세월/ Wanderlust Brake
저마다 한 번쯤은 방랑의 시절이 있을 수 있다. 사춘기 때 반항의 계절일 수도 있고, 세상을 배울 여행의 유랑(流浪)의 발작도, 사업의 시도와 실패로 인한 방황도 있다. 그대의 방랑벽(放浪癖)은 어떠했는가? 혹시 아직도 그런 방랑의 물결이 일렁이다가 마음이라도 지금 휘돌고 있다면, 필시 이 연말에는 고향으로 한 번 돌아올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섣달에 정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방에선 모두가 크리스마스 때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듯이[Everybody comes home at Christmas].
공자가 50까지는 특이함이 없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서른에 스스로 독립할 수 있었고, 마흔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섰으나 비로소 쉰이 되어서 야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분석하였다. 직업적으로는 51세가 되어서 야 비로소 공적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처음으로 지방관인 중도재(中都宰)가 되었다는 데, 요샛말로 하면 소도시의 읍장 쯤 이겠지? 말하자면 출세가 이르다고 는 하기 어렵다. 필시 착실했으니까 조국인 노(魯)나라의 사공(司空)에 발탁되었고, 마침내 사법 담당관인 대사구(大司寇)까지 올라서 그런대로 출세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그 이상 올라가지도 않았고, 정년 퇴임까지 거기 머물지도 않았으니 운이 없었던 지, 어쩜 불만도 있었을는지 모른다. 암튼 통틀어 겨우 4년 정도 벼슬 했다. 그리고는 인의(仁義)의 덕치(德治)를 표방하고 그 뜻을 펴려고 여러 나라를 주유(周遊)했지만 그 뜻을 받아주는 왕 또한 없었다. 14년 동안의 유세(遊說)를 성공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 74세에 죽을 때까지 6년 정도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3천 제자를 길렀다는 데, 공문 십 철(孔門十哲)도 있지만 이름 없는 제자들도 많았으니 예나 제나 그저 그런 사람도 공자 같은 스승에게 배웠을 테니까.
아예 불문(佛門)에 드는 출가자(出家者)도 있었고 돌아오지 않았던 방랑자 김 삿갓 같은 이도 있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방랑은 유명하여 참회록(懺悔錄)으로 인류에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고, 예수의 유명한 비유 탕자(蕩子)의 회심은 영원한 표본으로 남게 되었다. 어디까지 방랑의 길을 떠돌았던 가? 이유 없는 반항(反抗)이 청춘의 상징이 된 적도 있지만 대개는 되돌아온다, 적어도 늘그막에는. 1년에 한 번 쯤 크리스마스나 세모(歲暮)에는 집으로,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방랑은 고생도 되지만 색다른 도전과 경험을 겪게 하니 삶에 굴곡과 혼란과 카타르시스도 맛볼 수 있다. 잘하면 새 통찰력이나 깨달음 같은 것도 부산물로 곁들일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다른 관점을 보는 것 만으로도 생각의 지평을 조금은 넓힐 수가 있다. 당신의 그 방랑에선 무엇을 얻었는가? 2021년 석양에 생각해 봄직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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