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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主實義/ 조선인의 이해 (III)

天主實義/ 조선인의 이해 (III)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는 400년 전에 이미 조선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그 내용이 소개되었다. 그 책은 3번이나 중국을 다녀온 실학자 지봉 이수광(芝峯 李睡光/ 1563-1629)이 그의 백과사전적인 책 지봉유설에 일찌감치 설명했다. 중국에 서구 기독교 사상이 한문으로 출판되자 곧 조선에도 기독교에 관해 알려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가 한문 문화 권역이라서 그렇게 금방 식자들이 접하고 빨리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이수광이 17세기에 실학자의 눈으로 접한 기독교 이해다.
대서국(大西國)의 마테오 리치가 바닷길로 8년 만에 8만 리를 건너 동월(東粤)에 와서 10여 년을 살았다. 그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 천주가 천지를 창조하여 안양(安養)을 주재하는 도리에 대하여 논하고, 다음으로 사람의 영혼이 불멸 하는 것이 금수와는 크게 다른 것임을 논하고, 그 다음으로 육도(六道)를 윤회 한다는 말이 잘못된 것임과 천당과 지옥이 선악의 과보(果報)임을 변파(辯破)하고, 끝으로 사람의 품성이 본래 선하여 천주를 공경하여 받드는 뜻을 논하였다. 그들의 풍속은 임금을 ‘교화황(敎化皇)’이라고 부르는데, 장가를 들지 않기 때문에 세습하여 잇는 일이 없고 현명한 자를 택하여 세운다.
지봉에 이어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이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읽고서 또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지어서 그것을 논평 하기도 했으며, 뒤에 이벽(李蘗), 정약용(丁若鏞) 같은 사람들도 그 책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도 읽었다. 이익의 제자 하빈 신후담(河濱 愼後聃/ 1702-1761)이나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그 책을 척사(斥邪)라는 논지로 책을 지어서 강하게 천주학(天主學)을 논박 하였다. 신후담은 특히 서학변(西學辨)이란 책을 써서 우리나라 최초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을 남겼다. 서양 기독교가 일찍 부터 일부 조선 선비들에게 강한 자극을 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개 조선 후기에 이익과 그의 학문을 이은 실학파들에 의해 이 천주실의가 주목을 받았으니, 주자학(朱子學)의 영향으로 조선에 이론적인 수학(修學)과 진덕(進德)의 추구인데 반해 실학자들은 교육을 통한 실학(實學)에 눈을 돌린 것이라서 서양 기독교에도 그런 맥락으로 주의를 끌어서 비판까지 한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의 한국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천주실의를 통한 동양의 기독교 이해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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