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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성탄절

삭막한 성탄절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성탄절이 다가오는 12월이면 미국에서는 대개 그렇게 인사한다. 물론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나라들에서도 그랬고, 구라파의 산타클로스 전설과 함께 빨간 옷에 고갈 모자와 길고 허연 수염을 한 그 아이콘이 눈썰매를 타고 날아다니는 동화의 환타지는 아이들의 성탄 선물 로망이다. 오랜 관습과 전통의 분위기는 온통 크리스마스 무드라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을 통해 보내서 뜸하던 가까운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사하는 풍조에 젖어 있었다. 나도 해마다 수백 통의 성탄 축하 카드를 발송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거의 하지 않으니 실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한국에서도 신년 인사 카드를 근하신년(謹賀新年)이니 신희(新禧)라고 예쁘게 새긴 글씨와 색동옷과 한복을 곱게 입고 절하는 귀여운 그림을 컬러로 인쇄된 그림 엽서라도 친지들에게 보내던 습속도 이젠 사라지고 대신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message)로 대신하고 동영상이나 영상 카드로 전송하는 인터넷 모드로 변했다.

시골의 아주 작은 주일 학교에서 내 생전 처음 본 크리스마스 카드는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복스럽게 생긴 미국인 할머니 선교사가 와서 성탄 사탕과 함께 나누어준 하얀 눈이 덮인 설국(雪國) 천지에 천연색 성탄 카드는 너무나 예뻐서 내가 오랫동안 책 사이에 끼워서 보관하기까지 했거든. 그땐 성탄이나 세시(歲時)의 카드를 우편으로 주고받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고운 컬러 카드를 생전 처음 봤다는 사실이잖아. 그 선교사는 지나간 성탄절에 미국으로 주고받았던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간직했다가 그것들을 시골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 같다. 미국의 홀마크 카드회사[Hallmark Inc)는 대단히 성공한 기업이었으니 일찍부터 성탄절 카드와 생일 카드 등 그런 카드 전문 회사였지만 지금은 크게 달라졌지만 한때는 한국인 교포들 중에도 그림 솜씨 있거나 미술 대학을 나온 이들, 또 일반 사원으로 홀마크 카드 회사에 많이 일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내가 성년이 되어선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노래를 성탄 시즌이면 늘 들어오곤 한다. 아 낭만의 크리스마스가 늘 나는 좋았는데, 변하는 세상에 더욱이 서울에서는 크리마스 무드가 삭막해 내 오늘 아쉬운 마음으로 지난날을 혼자 되뇐다.

크리스마스 카드 대신 영상과 핸드폰 메시지로 바뀐 풍조와 함께 종교의 세속화도 한 몫을 했고, 소위 종교-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의식 구조의 변화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언젠가 부터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에 해피 할리데이(Happy Holiday)! 라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왜 그리스도교의 특정한 크리스마스만 축하하는가? 유태인들의 하누카 명절도 같은 시기이고, 구라파의 태양 숭배의 명절이 성탄절보다 더 오랜 중세 때부터 내려온 전통을 기독교가 낚아챘다고도 했다. 또 무신론자들이나 타 종교의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가? 그래서 문화적 보편주의를 주장하면서 교양 있는 사람들부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비록 자신이 크리스천이면서도 예를 지키는 양 해피 할리데이로 바꾸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타 종교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나눔의 트리(Giving Tree)로 바꾸어서 예수의 생일만 축하하는 게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도 포함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바꾸게도 되었다. 소위 성탄절의 세속화라는 명제이니 종교적 갈등과 기독교에 대한 압박이라는 토론이 일어났고, 급기야는 미국에서 법적이 소송이 전개되기도 해서 백악관 같은 관공서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울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철거하진 않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 그것은 온 인류의 소망과 기쁨이란 말이지만 비 기독자에겐 기쁨도 소망도 될 수 없다는 논리인데, 불탄일(佛誕日)에 연등 행사가 우리 고유의 오랜 전통이었는데 타 종교인들에게 거슬린다고 다 거둬야 하겠는가? 배타적인 종교적 편협은 거두고 다 같은 인류에게 소망을 말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나는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서 절밥을 먹으며 그들의 의미를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나와 다르지만 거기 인간의 소망과 빛을 염원하는 공동의 기원이 있지 않는가? 내 다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틀고, ‘Joy to the World'를 부르며, 헨델의 메시야 대합창을 동연상으로 오늘 들으며 혼자라도 삭막한 성탄절의 흥을 일궈야지, 이 코로나 재난에 이토록 삭막한 성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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