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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피카소와 마티스 / 靑出어藍

피카소와 마티스/ 靑出於藍


스승에게 배운 제자가 뛰어나게 발전하여 스승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했다. 푸른 물감은 예전에 일찍이 쪽 풀에서 추출했는데, 그 물감이 실상 그 원료인 쪽 풀보다 더 푸르게 되므로 생산품이 원료보다 더욱 진하게 푸르다는 뜻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학생은 스승에게서 배워 그 지식이 쌓이니 스승의 학식을 받아서 얻은 것이 된다. 거기서만 그친다면 선생의 수준이겠지만, 더욱 정진하면 그 실력에 자신의 소질이나 창의성이 더하여 스승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 성숙은 스승과 동료 등과 높은 존경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함께 받들고 싸우며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사람 사이(人間)에서 만이 그렇게.

그저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삶의 기쁨(Life & Joy)'이라는 주제로 지금 전시하는 프랑스 출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미술품 전람회에 일행 4명과 함께 갔다. 대개 젊은이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며 200여 점 약간의 그림, 삽화, 그림책, 판화 등의 작품을 보려고 관람객들로 가득해 우리가 이토록 미술의 예술성이 특출한가 할 정도였다. 늙은이는 우리 몇 뿐인 듯해서 받은 인상이었다. 파리 루브르[Louvre Museum]에 두 번이나 갔지만 그 많은 작품들 중에 마티스의 것은 내가 볼 겨를이 없었고, 그가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에게 영향을 준 스승이라는 사실도 전엔 잘 인식하지 못했다. 흔히들 마티스의 대표작이라고도 하는 1906년의 작품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은 소박하게 선으로 강조한 삽화들을 배열하여 노랗고 붉고 밝게 안락한 환락에 잠긴 표현이라서 나 같은 문외한도 만족하게 해 주었다. 새삼 마티스의 순진한 듯 단순한 선(線)만으로도 얼마든지 작품을 그렸으니 나도 그냥 그릴 것 같다는 착각에 몰입하게 만들고, 내게 인상적이었던 ‘푸른색의 여인’의 그 한 단 색의 작은 작품은 선으로 간략히 강조할 뿐이어서 그저 색과 한 면에 다 상상의 관능(官能)을 창안해 내는 구나! 하고 쉽게 상상케 했다. 15살에 화가가 되어 스페인에서는 두각을 나타낸 피카소가 더 배울 것이 없어 예술의 도시 파리로 처음 왔을 때, 역시 전시를 열었지만 파리 사람들은 아무도 피카소의 그림을 보러 오지 않아서 실망하고 있던 차에 어린 피카소의 그림을 와서 본 마티스 만이 천재 화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인연으로 피카소는 마티스를 스승으로 삼아 미술 공부를 했으니 마티스의 영향으로 새로운 미술의 경지에 눈을 떴고, 마침내 파블로 피카소라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내놓으며 시대를 초월한 입체파가 되어 드디어 20세기 미술의 거장에 올랐으니, 명실공이 청출어람이 아닌가.

앙리 마티스가 파리의 법학도였을 때 입원을 해 같은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고 21세의 그도 어머니가 사다 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화가로 변신했다 네. 그때까지는 진짜처럼 그리는 그림을 추구해왔는데, 마티스는 규범화 된 고정관념을 깨고 일반적으로 바다는 푸른 물감으로 녹음은 녹색을 만드나 그는 색채를 해방시켜 ‘푸른색의 여인’처럼 다른 조화로 그리는 소위 ‘야수파(Fauvisme)’가 되었다는 것이다. 피카소와는 반대로 철저한 성품에 50년 동안 어김없이 낮잠조차 계획된 시간을 맞춘 섬세한 마티스의 예술혼은 지금까지도 그래픽 아티스트와 일러스트레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데, 나는 그의 단순한 색상과 선의 표현이 밝아 그의 말대로 ‘안락의자에 않은 것처럼’ 내 정신을 편안하고 평화롭게 해주었다. 20세기가 되면서 사진이 예술에 침입하므로 진짜같이 그려내는 미술의 자리가 없어지자 마티스는 화가의 재 해석을 주장하면서 예민하고 냉철한 자신의 화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피카소는 사물의 형태를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스승의 견해에 각을 세웠고, 직감과 열정의 특징을 강조한 피카소는 마티스를 넘어서는 새 길을 갔으니 사제 간이며 친구였던 12살 차이의 두 화가는 결별을 했고, 마침내 는 서로를 경멸도 하면서 마지막까지 상종도 아니 하였다 네. 85세의 마티스가 임종에 가서 야 간접적으로 크게 인정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의 전시에는 내 그림을 걸지 마라, 내 것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한편 피카소는 ‘캘리포니아의 화실’이라는 제목으로 마티스의 장례식을 가는 대신에 그림으로 죽은 스승을 애도했다고 한다. 존경으로 스승을 삼아 새 길을 안내 받고 깊은 우정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는 경모의 존경과 또 한편 불타는 경쟁으로 천재성을 불태운 지난 세기의 두 거장과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내가 마티스의 전시장에서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