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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辟邪迎福/ 사귀를 쫓고 복을 영접

辟邪迎福/ 사귀를 쫓고 복을 영접

오늘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의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 기둥에 붙이며 복을 맞이하고 악한 귀신을 물리치려 염원하는 날이다. 봄 소식 자체가 기쁨이지만 그 양기(陽氣)에 복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 오랜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아닌가. 대궐의 임금과 사대부들로부터 글을 하는 집이면 그렇게 소원을 하고 돈 있으면 입춘첩을 남에게 부탁해 써다가 붙였는데, 그렇지 못한 서민은 예부터 정초(正初)에 악귀와 재난을 내쫓는 방귀척사(防鬼辟邪)의 민속적 염원을 주술이나 액 땜으로 빌었다. 세찬(歲饌)에 도소주(屠蘇酒)로 건강을 빌었으니, 죽일 도(屠)자는 악한 귀신을 잡아 없앤다고 그 소주를 마셔서 악귀를 1년 내내 쫓아버리고 또 오래 산다고 믿었던 민속 신앙이었다. 도라지 곧 길경(桔梗), 산초(山椒), 방풍(防風), 육계(肉桂)를 넣어서 빚은 건강주로 믿었다. 후한(後漢)의 화타(華陀) 의원 또는 당(唐)나라 손사막(孫思邈)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우리 고려(高麗)에도 유행했고 지금까지도 노인 층에서 더러 마신다.

집집마다 복 조리는 정초부터 매달아 복을 퍼 올릴 기대를 담았고, 온갖 척사(斥邪)와 영복(迎福)은 지금도 여러 종교 양태와 일상에 여전하지 않은가? 심방을 가서 축복 기도를 비는 가하면 염불을 외고 정초에 절에 가서 부적(符籍)을 사다가 붙이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정월 초하루 날부터 날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임계(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지지(地支)의 상징물인 쥐의 날, 소의 날 등을 따라 정월 보름 날까지 거기에 걸 맞는 주술 행위를 액 땜처럼 실행했었다. 교회에 나가시기 전에는 선비(先妣)께서 큰 아들인 내게 첫 뱀 날에는 새끼 줄을 끌고 울타리 밑으로 마당 가로 돌면서 ‘뱀 잡아라!’며 외치라고 하셔서 시행했던 어린 때를 기억한다. 대보름이나 소 날이면 나물과 찰밥을 소반에 차려서 마구간의 소에게 대접할 때 무엇을 먼저 핥아 먹는가 에 따라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으며, 지금은 잊었지만 여러 가지 민속적인 주술과 귀신과 사악함을 쫓아냈었다. 부럼을 깨어 종기를 예방하려 했고, ‘내 더위 사라!’며 올 여름의 더위까지 팔지 않았던 가. 지금은 그런 방귀척사(防鬼斥邪)를 시골에서도 별로 아니 하는 것 같으니, 토속적인 신앙 관념도 사라지고 민속도 도시화와 현대화로 변했기 때문인데, 아직도 점술과 풍수설 같은 역술(易術)은 여전히 숭상하는 경향이 남아있다.

정초의 첫 쥐 날이면 쥐불 놀이로 쥐를 쫓고 해충을 없애는 주술, 소 날엔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잘 먹여 일 잘하기를 기원하고, 범 날은 왕래를 삼가고 여자의 외출을 조심했다. 토끼 날은 남자가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며 장수를 빌고, 용 날은 먼저 우물물을 길어오고 용 머리 다칠 새라 칼을 쓰지 않으며, 뱀 날엔 머리를 깎거나 빗지 않고 뱀 쫓는 의식을 행한다. 말 날은 고사 지내고 장을 담그며, 양날은 걸음걸이가 방정 맞다 며 어촌에선 출어(出漁)를 않고, 원숭이 날엔 일하지 않고 닭 날엔 바느질 아니 하며, 개 날에는 일을 쉬고 돼지 날엔 검은 얼굴에 왕겨나 콩깍지를 문지르면 살결이 하얗게 고와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선 그런 척사영복 행위도 거의 사라지고, ‘세 가지 재앙은 가고 오복은 오라(去三災 來五福)!’ 등의 입춘첩 붙이는 이도 이젠 아주 적어졌으니 믿지도 않지만 그걸 붙일 아파트도 마땅치 않다. 이젠 새롭게 디지털 마인드(a digital mind)에 메타버스(metaverse)로 새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