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섣달 대목장 / 歲市

섣달 대목장/ 歲市

오늘은 예전에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대개는 대목 장(場)이 서는 날이니 특별한 쇼핑 날[the market day for special shopping]이었다. 섣달은 ‘설 달’ 곧 설이 드는 달에서 굳어진 말인데, 숟가락이 ‘술 가락’에서 나와서 강원도 일각의 방언으로 남았으니 '숫'에서 ㄹ이 탈락되고 ㄱ앞에 ㅅ이 붙어 변형된 말의 예증이다. 숟가락과 섣달이 그런 경우이다. 대목은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을 바로 앞두고 경기(景氣)가 대단히 활발한 한 때를 일컫는 말로, 현대 경제적 표현으로 호황(好況)과 같고 불황에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네 전통에서는 반드시 섣달 대목은 대단한 호황이었으니, 모두가 설빔을 위해 무엇인 가를 반드시 사야 했고 설빔을 위해 무엇인 가를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던 게 아니었던 가. 가장 중요한 명절에 모든 사람들이 명절 만은 반드시 뜻 깊게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친지를 만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세배 인사하는 전통 민속 축제이기 때문이었다.

섣달 대목장이 우리 전통 개념상 최고의 상거래의 날이었다. 설을 쇠는 온 민족이 설빔을 위해 모두가 장에 가고 또 설 대목에는 반드시 제수(祭需)와 설 명절을 위한 물건을 사야 하는 세시(歲市)이기에 섣달 대목장에는 처녀 불만 빼고는 다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날은 무엇이나 팔 수 있고 무엇이나 살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처럼 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바로 그런 대목장이다. 이때는 1년 총 판매고의 1/4이나 매상고(賣上高)를 올린다고도 하니 엄청나게 물건을 사고판다. 최대의 명절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부터 1년 내내 갖고 싶어서 벼르던 상품을 사는 것까지 많이들 구매하는 날이기 때문이며, 이 대목을 노리는 상인들은 단단히 상품 준비를 하고 또 특가 세일을 한다고 선전을 한다. 심지어 문을 열기 전부터 장사진을 이루며 세일 품목을 경쟁하면서 사려고 잔뜩 기다리기도 한다. 그로서 블랙 프라이데이의 매상고를 보고 경제 동향과 지표를 계산할 정도이니까.

코비드-19 전염병의 오미크론 변종(變種)으로 한국은 지금 하루에 감염자가 1만 명을 넘기는 혼란으로 말미암아 정부에서도 시작된 이번 구정 귀성객(歸省客)들에게 가능한 한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하니, 장사하는 이들에게 2022년의 섣달 대목장은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어제 한 신문에는 한창 붐벼야 할 그 유명한 서울의 명동이 사람이 텅 빈 대목의 지금 모습을 예전의 붐비던 사진을 곁들여 싣고서 썰렁한 현상을 클로즈-업해서 놀랐다. 코로나 역병으로 우리의 경제가 위축되고 국제 유가(油價)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박에 물가가 올라 더욱 더 이번 섣달 대목이 힘겨운 것 같아 상인들이 안타깝다. 설날이 흥겹고 오가며 세배하고 덕담(德談)을 나누며, 흥겹게 먹고 나누어 마시며 우리의 명절이 한없이 기뻐야 할 때에 오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니 무슨 낙(樂)이 있으며, 어찌 마음껏 먹고 나누어 마실 수가 있겠는가. 그런 악순환에 물건도 덜 사는 바람에 경제 유통조차 마비가 되면 그토록 흥청거릴 섣달 대목장을 어찌하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에요!” 아, 그리운 어릴 제 그 설날이 여, 얼마나 기다려지고, 또 흥겨웠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