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독교의 현실/ Reality of Chinese Christianity
중국에서 2022년 3월부터는 외국인이 중국의 온라인에 종교 관련 내용물 올리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고 국가 종교 사무국이 발표했다. 반드시 중국 사람만이 종교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 매체에 올릴 수가 있고, 그것도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소위 종교의 중국화 라는 명목으로 종교의 자유를 옥죄는 징조로 예배, 미사, 경전 낭독 등의 동영상조차도 금지한다니 공산당 외에는 종교의 전파를 차단하는 모양이다. 중국에는 지금 1억이 넘는 개신교인들과 또 1천만 이상의 가톨릭 신자의 숫자를 밖에서 추산한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 확장세는 땅 끝까지 퍼져나갔으며 중국에도 서방 기독교에서 대단한 선교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지닌 중국의 기독교인은 1960년대의 문화 혁명이 끝날 때까지 3백만의 기독교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소위 등소평(鄧小平/ 1904-1997)의 개혁 개방 정책 이후 30년 동안 가정 교회(house churches)가 우후죽순으로 확산되었다.
1949년 모택동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격변했다. 소위 삼자 애국운동(Three Self Patriotic Movement)이라며 교회의 정치적인 혁신이 시도 되었고, 이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적 기독교인은 영적 운동의 선구자였던 워치만 니(Watchman Nee/ 倪柝聲/ 1903-1972)와 같은 이들이 삼자 운동은 정치 신학이며 자유주의로 규정하고 교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해야 한다면서 저항과 지하로 피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삼자 운동은 지금까지도 보이는 중국 교회의 현상이고 지하로 숨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국에는 확장되어왔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x/ 1818-1883)의 말에 따라 종교를 통제하고 강제 수용소에 감금하는 등 박해가 심하였다. 종교의 자유라고 편의상 내건 공산당 정권은 그 삼자 운동의 정신으로 195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개신 교회를 설립하고 모든 교회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게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기독교회라 기보다는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종교 형태일 뿐이다. 이리하여 그것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가정 교회와 지하 교회로 숨은 것이다.
그러면서 공산당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기독교인들을 우선적으로 감시하였다. 정부는 개신교인을 3천 8백 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개가 2010년 이후에 증가로 보고, 2030년이면 세계 제일의 기독교인이 사는 미국보다 그 숫자를 능가할 것이라고 추측할 정도이다. 그거야말로 중국이 미국을 이기고 싶지 않은 건수 중의 하나 이겠지만 말이다. 공산당 정부가 언론 자유를 압박하는 목표가 바로 교회라 철거하고,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상징들은 부수고 세속화 한다. 예배 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목사들의 설교를 감시한다. 천주 교회에 성모 마리아 상을 시진핑(習近平) 사진으로 교환하게 한다니 까. 2020년 10월의 신화사 뉴스에 따르면 공산당 정부가 인증하는 성서를 발표했다 네. 신약의 예수가 간음 하다 잡혀온 여자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던 것을 그들의 새로운 번역판[version]에는 고소 자들이 다 떠난 뒤, 예수 자신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면서 말했다, “나도 죄인이다. 죄 없는 남자들만이 법을 집행할 수 있다면, 그 법은 죽은 것이다.”
중국에서 2022년 3월부터는 외국인이 중국의 온라인에 종교 관련 내용물 올리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고 국가 종교 사무국이 발표했다. 반드시 중국 사람만이 종교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 매체에 올릴 수가 있고, 그것도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소위 종교의 중국화 라는 명목으로 종교의 자유를 옥죄는 징조로 예배, 미사, 경전 낭독 등의 동영상조차도 금지한다니 공산당 외에는 종교의 전파를 차단하는 모양이다. 중국에는 지금 1억이 넘는 개신교인들과 또 1천만 이상의 가톨릭 신자의 숫자를 밖에서 추산한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 확장세는 땅 끝까지 퍼져나갔으며 중국에도 서방 기독교에서 대단한 선교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지닌 중국의 기독교인은 1960년대의 문화 혁명이 끝날 때까지 3백만의 기독교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소위 등소평(鄧小平/ 1904-1997)의 개혁 개방 정책 이후 30년 동안 가정 교회(house churches)가 우후죽순으로 확산되었다.
1949년 모택동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격변했다. 소위 삼자 애국운동(Three Self Patriotic Movement)이라며 교회의 정치적인 혁신이 시도 되었고, 이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적 기독교인은 영적 운동의 선구자였던 워치만 니(Watchman Nee/ 倪柝聲/ 1903-1972)와 같은 이들이 삼자 운동은 정치 신학이며 자유주의로 규정하고 교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해야 한다면서 저항과 지하로 피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삼자 운동은 지금까지도 보이는 중국 교회의 현상이고 지하로 숨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국에는 확장되어왔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x/ 1818-1883)의 말에 따라 종교를 통제하고 강제 수용소에 감금하는 등 박해가 심하였다. 종교의 자유라고 편의상 내건 공산당 정권은 그 삼자 운동의 정신으로 195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개신 교회를 설립하고 모든 교회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게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기독교회라 기보다는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종교 형태일 뿐이다. 이리하여 그것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가정 교회와 지하 교회로 숨은 것이다.
그러면서 공산당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기독교인들을 우선적으로 감시하였다. 정부는 개신교인을 3천 8백 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개가 2010년 이후에 증가로 보고, 2030년이면 세계 제일의 기독교인이 사는 미국보다 그 숫자를 능가할 것이라고 추측할 정도이다. 그거야말로 중국이 미국을 이기고 싶지 않은 건수 중의 하나 이겠지만 말이다. 공산당 정부가 언론 자유를 압박하는 목표가 바로 교회라 철거하고,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상징들은 부수고 세속화 한다. 예배 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목사들의 설교를 감시한다. 천주 교회에 성모 마리아 상을 시진핑(習近平) 사진으로 교환하게 한다니 까. 2020년 10월의 신화사 뉴스에 따르면 공산당 정부가 인증하는 성서를 발표했다 네. 신약의 예수가 간음 하다 잡혀온 여자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던 것을 그들의 새로운 번역판[version]에는 고소 자들이 다 떠난 뒤, 예수 자신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면서 말했다, “나도 죄인이다. 죄 없는 남자들만이 법을 집행할 수 있다면, 그 법은 죽은 것이다.”
'지인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자문 조크/ 天地玄黃 焉哉乎也! (0) | 2022.02.08 |
---|---|
Meme Culture / 팔방 문화 (0) | 2022.02.07 |
Together for a Future / 2022 동계 올림픽 (0) | 2022.02.05 |
辟邪迎福/ 사귀를 쫓고 복을 영접 (0) | 2022.02.04 |
Natural Immunity / 자연 면역이 (0) | 202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