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조크/ 天地玄黃 焉哉乎也!
천자문은 한 편의 긴 4언시(四言詩)로 4자씩 총 250구(句)를 이루었는데, 한 구는 이어지는 다른 구를 대구(對句)로 짝을 삼았으므로 125 쌍이 된다. 대개 한시(漢詩)의 형식이 그러하여 이 많은 1천 글자의 조합이지만 한 글자도 두 번 쓰이지 않았으니 대단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주흥사(周興嗣) 한 사람이 컴퓨터도 없는 그 옛날에 말이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 나오는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첫 구를 시작했다. 그가 날이 새도록 노력하여 임금의 명령대로 하룻밤에, 글자가 거듭 쓰이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글이어야 했으니 마지막 구에 이르러 1천 자를 채워야 하는데 4글자를 생각하다가 고단해 깜빡 졸았다. 아, 꿈에 ‘어조사가 있지 않느냐!’ 라는 소리에 깼다네. 드디어 글자의 뜻이 별로 없는 어조사(語助辭) 네 글자로 마무리 한 것이 천자문의 끝 구절인 ‘언재호야(焉哉乎也)’였다.
그래서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의 검던 머리칼이 온통 하얗게 셌더라는 전설로 인하여 소위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천자문을 어릴 제부터 글자를 익히면서 우리 조선에서도 많이들 배워 왔으므로 천자 공부에 얽힌 익살스런 에피소드도 있다. 나도 철없이 첨으로 천자문을 외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내도 천자문 다 안다?” “할머니는 몰라요! 배우지도 않고 어떻게?” 양양하게 할머니께서 거침없이 외우셨으니 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이요, 언제호야(焉哉乎也)라!” 우리 할머니가 안 배우고도 그 처음과 끝을 다 아실 정도로 자녀 손자, 조카들이 할아버지께 배우는 걸 하도 많이 들어서 그렇게 익숙하셨다. 천자문을 모두 외웠으니까.
고봉(高峰 奇大升/ 1527-1572)의 천자문 에피소드라고 한다. 독 선생을 두고 천자문부터 어려서 배웠는데, 하늘 천, 따지를 자꾸 반복해도 잊어 먹고 잘 외지 못하자, 선생이 소를 끌어다가 머리를 치켜세우면서 “하늘 천” 하고, 내리 누르면서 는 “따지!”를 반복하다가 손을 놓고도 소리만 “하늘 천” 해도 소가 고개를 쳐 들었다가, “따지” 하면 고개를 숙였다. “이놈 아, 소도 하늘 천 따지를 다 기억하는데, 너는 소만도 못하냐?” 가만히 있던 어린이가 말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면, 언재호야(焉哉乎也)를 하시독(何時讀)고?” 천자문 첫 대가리인 천지현황을 3년이나 오래 걸려서 읽는다면, 그 끝의 언제호야를 어느 때에나 끝내 다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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