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국의 궁합/ Rice & Cook
우리의 기본 식단은 밥과 국이다. 밥이 주식(主食)이지만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듯이 우리는 언제부터 인가 늘 밥은 국과 함께 먹어왔으니, 넉넉지 못했던 1960년대엔 나물 국이라도 따뜻하게 끓여서 아침을 먹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어떻게 밥을 지을 줄 알았으며, 우리의 밥과 국은 어떻게 짝이 되었을까? 기록이 없어 잘 모르지만, 고구려 벽화에서 음식을 시루에 찌는 주방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추론하기로는 오늘날처럼 솥에 짓는 대신 쌀을 시루에 찐 것이 먼저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생각하면 그럴 것도 고대의 토기가 지금처럼 단단하지 못하였을 테니 그런 토기에 곡물을 넣고 익히자면 가열된 토기에서 흙냄새가 밸 수 있어 좋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토기의 시루에 김으로 쪄서 밥을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경(詩經 大雅)에 한 번 찐 밥일 것이라 여기는 분[饙]이 있고, 두 번을 쪄서 김으로 뜸 들인 밥인 류(餾), 물에 만 밥인 손(飱), 또 그것을 찬(饡)이라는 한문으로 표기했다. 철기 시대에 쇠가 발달하여 가마솥 같은 것이 발명 된 뒤에야 제대로 맛있는 밥을 지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고려 때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高句麗本紀)에 대무신왕 4년 란에 정취(鼎炊)라는 글자가 있어 신라 때에 솥에 불을 땠다는 암시를 받고, 신라 고분에서도 쇠 솥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밥은 쌀밥이든 보리나 기장, 좁쌀 밥이든 자체의 맛보다는 소금기와 부식(副食)의 반찬이 있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을 옛 사람들도 어찌 일찍이 발견하지 못했겠는가. ‘맨 밥’은 그냥 먹기 힘 든다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만 생각해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 밥과 국의 유래나 역사를 문자가 없던 만 년 전의 일을 우리가 지금 알기가 어렵다. 한문을 사용했던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의 그런 기록의 보고를 못 봤고, 조선 시대의 것도 흔치는 않다. 소로리 고고학적 발굴처럼 밥을 먹은 게 우리에겐 굉장히 오랜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사람들이 일찍이 염기(鹽氣)를 곁들였을 것이라는 추론은 쉬울 것 같고, 등 금 장수 옛날 얘기를 우리 할머니들에게서 어려서 많이 들었던 걸 보면 바닷물을 끓여 증발시키거나 햇볕에 말려 만든 소금을 내륙의 산골로 짊어져다 귀하게 팔았을 추론도 쉽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간간한 국과 함께 먹었을 것이다.
밥은 순수한 우리말의 메, 진지, 수라도 있는데, 이는 시대의 변천과 사회 계층에 따른 언어의 다양성이라고 배웠고 한문에는 식(食), 반(飯), 미반(米飯)이라고 했다. 1588년에 간행한 조선의 소학언해(小學諺解)에 설명된 뫼, 곧 ‘메’가 쌀 미[米]자를 아래 아 모음으로 발음한 것이며 제사에 신위(神位) 앞에 놓는 밥과 궁중에서 밥을 이른다고 했다. 미(米)의 경음화(硬音化)로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ㅁ에서 ㅂ으로 가볍게 변하여 ‘벼’로, 몽고어의 바라/bara/米, 여진어의 버러/burə/米, 일본어의 메시/めし/米 등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은 놀랍게도 영어의 조리(調理)나 요리(料理)를 뜻하는 ‘쿡(cook)'이니 어쩌면 우리의 ’국(cook)'에서 유래한 어원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국인은 국이라는 말이 탕(湯)인데 우리도 제사에 올리는 국은 탕이라 하나, 우리의 국은 탕보다는 국물이 많고 덜 짜지 않은가. 일본어에도 국은 없어서 영어의 스프(soup)를 빌려다 쓸 정도라니 까. 우리의 ‘국’이 우연의 일치일까, 영어의 쿡(cook)이 요리가 될 정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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