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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고령 고관 / 상류층의 노령

高齡 高官/ 상류층의 노령

늙도록 건강하여 장수(長壽)를 누리고 높은 지위의 특권을 지녔던 조선 시대의 사회적인 현상은 어떠했던 가?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열심히 수학(修學)해서 계수(桂樹)나무 가지를 얻었던 극소수의 행운을 획득하고도 곡절 많은 벼슬의 출세 길까지 순탄하게 긴 세월 높은 벼슬에 올랐다면 대단한 상서로움이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무병장수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선조(宣祖) 때 심수경(聽天堂 沈守慶/ 1516-1599)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154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급제하였으니 바탕도 영재(英材)였고, 8도 관찰사를 고루 지낸 경력도 행운이었으니 온 백성들의 인심에 대한 경험도 풍성했을 것이 아닌가. 우의정(右議政)까지 오른 데다 청백리(淸白吏)에도 녹선 되었을 정도로 욕심도 없었던 것 같다. 한국 나이로 84에 작고 하던 해에 마무리 했다는 견한잡록(遣閑雜錄)에 오래 살았던 벼슬아치들에 관한 그때의 상류 사회 노령(老齡)의 한 단면을 보고 내 호기심이 작동해서 여기 한 토막을 짚어본다.

이야기는 그가 82세 되던 1597년에 쓴 것 같으니, 조선의 대혼란이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이 휩쓸고 간 뒤 쯤이다. 그가 목격한 최고급인 재상(宰相) 반열의 고관들이 80세 이상을 살았던 경우를 언급한다. 송순(宋純/ 1493-1583)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까지 지내고 92세를 살았고, 찬성(贊成) 오겸(吳謙/ 1496-1582)은 89세, 영의정 홍섬(洪暹/ 1504-1585)은 82세, 판중추(判中樞) 원혼(元混/ 1496-1588)은 93세, 지중추(知中樞) 임열(任說/ 1510-1591)은 82세를 살았다는 것이다. 당시 그와 함께 생존한 노령의 재상 급은 우참찬(右參贊) 송찬(宋贊/ 1510-1601)과 82세인 자기 자신이 아직도 병 없이 건강해서 다행이라 했다. 여기 서교 송찬(西郊 宋贊)은 진천송씨로 나의 방조(傍祖)가 되신다.

조선시대에 소위 기로소(耆老所)는 조정에서 만들어 높은 벼슬을 지낸 노령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어주고 축하해주던 고급관료 클럽[俱樂部]인 셈이다. 그건 당(唐)나라와 송(宋)나라의 전통을 본 삼아서 우리 고려(高麗)에서도 시작했다니 오랜 전통, 70세 이상 2품 이상의 관작(官爵)의 회원, 삼월 삼짇날과 구월 중구이면 잔치를 열어주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훈련원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로소 잔치를 베풀었다. “나는 을유 년에 좌참찬으로 참여하였는데, 의정(議政) 노수신(盧守愼)과 의정 정유길(鄭惟吉), 판부사(判府事) 원혼(元混), 팔계군(八溪君) 정종영(鄭宗榮)과 지사(知事) 임열(任說)과 지사 강섬(姜暹)이 동료가 되었고, 그 후 판서 황임(黃琳), 판서 안자유(安自裕), 판서 이인(李遴), 영부사 김귀영(金貴榮)이 또 동료가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제공(諸公)들이 서로 이어서 작고 하고, 오직 김귀영, 강섬과 나만이 생존하여 인원수가 매우 적은 관계로 기로회를 하기 어려웠다. 지금 송찬(宋贊)이 지중추로 88세이고, 나는 영부사로 82세이며, 이기(李墍)는 이조 판서로 76세인데 아직 병 없이 건강하다. 임진 난 후에는 폐지되어 기로회를 열지 못하다가 의정 유홍(兪泓), 판서 이헌국(李憲國), 이증(李增), 참판 유희림(柳希霖), 이희득(李希得), 이관(李瓘)이 모두 참여하였으나 또한 기로회는 열지 못하였다. 이헌국은 73세이며, 이증은 72세이고, 유희림은 78세이며, 이희득은 76세로 모두 병 없이 건강하다. 정유[1597]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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