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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개 보름 쇠듯 / 月犬相剋

개 보름 쇠듯/ 月犬相剋

잘 먹고 흥청거려야 할 명절이나 잔치 날에 잘 먹지도 못하고 쓸쓸히 보낼 때면 ‘개 보름 쇠듯’한다고 우리는 그 속담을 인용하곤 했다. 미국에서 이민자들이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그 사회의 현실은 전혀 명절 분위기가 아니라 쓸쓸하게 보내는 교포들이 종종 그렇게 말한다. 대보름이라도 오곡밥도 못 먹고, 부럼을 깰 분위기도 아닌 경우에 하는 표현이다. 더욱이 다른 문화권의 아내를 얻은 남자들의 푸념이 그럴 수 있다. “아, 개 보름 쇠듯‘이란 속담을 백인 아내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데 어찌나 힘든지,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더라는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만약 한국으로 시집 온 백인이 성탄절에 겨우살이 미슬토(mistletoe) 장식 아래서 는 아무에 게나 키스한다는 풍속을 한국인 남편에게 어찌 설명하겠는가?

보름 날 개에게 밥을 주면 파리가 들끓는 다는 속설(俗說)로 예전에는 시골에서 흔히 집에서 기르는 개를 굶기거나 혹은 마지못해 저녁 한 끼만 주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이었는가? 그걸 지금 해석하기는 오곡밥의 콩류(類)와 잡곡들이 많이 섞여서, 또 9가지의 여러 종류의 묵은 나물까지 곁들여 사람들이 먹는 찌끼를 대개 개에게도 주었으니, 그것이 개에게 소화 불량을 일으키기가 쉬웠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 늑대를 순화(馴化)시켰으니 육식(肉食)이었던 늑대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수만 년 동안 사람의 음식에 길들여왔지만, 아직도 소화기관은 사람들과 달라서 채소나 콩과의 음식물은 소화가 어렵다는 논리다. 개들을 위해 보름 날에 따로 밥을 짓지는 않았으니 먹던 찌꺼기 줄라 치면 묵 나물 진채(陣菜) 여러 가지가 섞이고, 오곡밥 찌끼의 콩팥 등은 개들이 소화 못하고 병에 걸리면 파리 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여름을 괴롭히는 파리가 꾄다는 터부(taboo)를 덧붙였을 것도 같다.

또 다른 해석은 월견상극(月犬相剋) 때문이라는 것. 달과 개는 상극(相剋)이라 서로 맞지 않아 상충된다는 전제가 작용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월식(月蝕) 때나 일식(日蝕)도 개가 달이나 해를 삼켜서 생긴다고 할머니들이 말했다. 하늘의 천랑성(天狼星)이 늑대의 별 곧 개의 별이라고 했으니 그 개의 별이 달, 해를 삼켜서 월식이라니 까. 해를 삼키는 재앙이라 여겼으므로 달과 개의 나쁜 관계인 양 생각되어진 것이라는 거. 그래서 여름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삼복(三伏)에 고대에는 개가 태양을 삼키지 못하도록 개를 잡아서 미리 막았다는 고래의 생각에서 복(伏) 날에 개를 잡아먹었다고 도 했거든. 그러므로 정월의 둥근 달이 뜨는 첫 달의 원소절(原宵節)에 그 주인공 달은 음(陰)의 극치, 여성적인 그 절정의 날을 축제 하며 여성들이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밤인데, 달과는 상극이라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고래로 산야(山野)의 외로운 늑대가 달을 향하여 울부짖고, 개도 짖는다. 대보름 달 앞에 개가 짖지 못하도록 기운을 빼려고 밥을 굶겼다는 논리다. 지금이야 애지중지하는 반려견(伴侶犬) 세상엔 한갓 된 지나간 풍속이었을 뿐이지만, 민속의 대보름에 개 보름 쇠듯 할 수야 있겠는가? 그 신 나던 불 깡통 돌리기로 황홀하게 즐기던 쥐불 놀이를 추억 하며 달 구경이라도 즐겨야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