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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부럼과 오곡밥/ 民俗的 實狀

부럼과 오곡밥/ 民俗的 實狀

 

정월 대보름엔 부럼을 깨고 오곡밥에 진채(陣菜)를 왜 먹나? 대보름 아침에 마시는 귀밝이술[耳明酒] 청주 한 잔의 옛 풍습으로 실로 귀가 밝아지는가? 못 마시는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은 굳이 작은 잔에 조금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권했다. 실상 아이들의 귀야 그걸 안 마셔도 괜찮았겠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는 노령에겐 처음에는 가는 귀가 멀어지다가 해가 갈수록 잔 귀가 어두워지고 점점 더 큰소리를 치게 되는 것이 우리 주변의 노령들에게서 보지 않았던 가. 필시 그런 노인들의 염원이 보름 날에 이명주 한 잔에 귀가 밝아지기를 왜 소원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명주 보다 이젠 보청기(補聽器)를 끼는 노인이 현명할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에서도 보청기엔 보조금도 준다니 까. 귀밝이 술은 소원일 뿐이지만, 보청기는 잘하면 실감이 날 테니까. 열 나흘 날 밤에 호두와 잣으로 부럼을 깨고 부스럼 막이로 믿는 이는 지금 별로 없을 걸? 이제는 대보름 명절도 흐려지듯 민속적인 기복(祈福) 양태도 흐려져 간다. 오곡밥이야 옛 사람들의 슬기이니 여러 가지 곡식을 함께 먹는 게 영양학적으로 도움이 된다. 보름 나물, 묵은 나물[陣菜] 다양하게 갖추었으니 역시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를 챙기어 비타민 결핍을 막아주지 않겠는가. 별 식(別式)의 찰밥은 맛도 있고 게다가 견과류와 콩 종류까지 곁들이니 말이다. 슬기로운 민속은 실상에 부합하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이으며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속 가치의 실상이다. 실제로 바쁜 농사철이 되기 전 온갖 나물로 비타민과 오곡밥의 콩 종류 등의 영양을 갖추게 되니까.

오곡밥과 보름 나물을 즐기고, 고소한 견과류의 부럼 깨는 기쁨에 이명주 한잔의 흥도 모두가 기쁘게, 건강하게, 바르게 사는 슬기로운 웰빙(well being)의 민속이다. 무엇이 복 된 삶인가? 잘 사는 것이 복 되고, 잘 사는 건 주술과 염원에 달린 게 아니라, 즐겁게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니 랴.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사는 것, 바르게 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리라. 보름 날에 고대 희랍의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Epicurus/ 341-270 BC)의 말을 새긴다, 잘 사는 삶이 즐거운 삶이요, 기쁜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 했다. “슬기롭고 바르게 잘 살지 않고는 기쁘게 살 수가 없다. 그리고 기쁜 삶이 아니고 는 슬기롭고 바르게 잘 살 수가 없다(It is impossible to live a pleasant life without living wisely and well and justly. And it is impossible to live wisely and well and justly without living a pleasan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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