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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수구레가 두껍다/ 恬不知耻

수구레가 두껍다/ 恬不知耻

유식한 선비는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하지만, 상민(常民)은 ‘수구레가 두껍다’ 고 흔히 말했다. 염치 문화(廉恥文化)라 말할 정도로 우리 동양 3국에선 고대로부터 체면(體面)과 염치(廉恥)로 사람의 품격을 쟀다. 2천 년도 넘는 옛날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本性)에 누구나 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있다고 믿었으니 겸손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본도 무시한 채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변태의 번들 번들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 그 작고 납작한 몸체에 거의 있을 수가 없을 ‘모기/빈대도 낮 짝/ 코 등이 있다.’는 억지에 견준 속담이 생겨 나왔다. ‘행랑/봉당 빌려 안방 차지한다.’는 몰염치의 표본도, ‘양푼 밑 구멍은 망치 자국이나 있지.’ ‘염치(廉恥)와 담 쌓은 놈’은 아예 제쳐 놓은 파렴치이고, 나라님에게 바친 ‘상납 돈도 잘라 먹는다’는 뻔뻔스러움이며, ‘남의 떡 함지에 넘어진다.’는 기발한 해학(諧謔)에, 남의 큰일에 왔다가 돌아갈 때는 ‘대사(大事) 뒤에 병풍 지고 나간다.’는 기막힌 배짱!

꽉 들어찬 길을 뚫고 나가는 수법으로 인분(人糞) 장부 메고 ‘오물이요, 오물이요!’하면서 나가는 파렴치는 ‘네 다리 빼라 내 다리 박자’는 속담에서 배운 것 같다.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속담은 ‘노래기/ 장지네 회 쳐 먹겠다’ 니. 그 고약한 노린내를 그것도 산 채로 회를 먹을 정도면 쇠 가죽이 아니고 서야? 염불지치(恬不知耻)는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한(破廉恥漢)이다. 쇠 가죽[鐵面皮]처럼 파렴치하고, 얼 낯 가죽이 두꺼운 후검피(厚臉皮),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수구레가 두껍다’에 집약된다. 먹거리가 빈약하던 이전엔 서울 변두리에 수구레 장수 아주머니들이, 푸줏간에서 좋은 부위는 다 고기 간으로 보내고 쇠 가죽 안에 붙어있는 하얀 질긴 부분을 칼로 다시 벗긴 조각들을 모아서 따로 싼값에 팔았다. 큰 양푼에 담아 이고 다니면서 달 동네 같은 데서 소매 하던 고역(苦役)의 아낙네가 수구레 장수였다. 빈곤층은 쇠 기름 둥둥 뜨면서 구수하고 수구레 건더기는 질깃질깃 해서 씹히는 맛이 ‘쇠고기는 씹는 맛’이라며 국 끓여 먹었으니, 쇠고기에 비해 월등 쌌기 때문이었다.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로 오래 씹어도 잘 풀어지지 않아서 질기기가 그지없어 정말 질릴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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