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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에베소에서 / Ephesus at Seluck

에베소에서/ Ephesus at Selcuk

에베소(Ephesus/ Efes)는 그리스인들이 와서 살았으나 후에 로마 제국의 무역 항구로서 흥청 거린 곳이었다. 지금까지 남은 자취는 신약 성서에 언급되었던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의 유적, 아고라(Agora)와 원형 극장(the Great Theater), 트로이 분수(the Fountain of Trajan), 셀수스 도서관(the Library of Celsus), 성모 마리아가 살았다는 집(the House of the Virgin Mary)이라며 작은 모양이 9km 거리에, 요한의 묘소가 있었다는 자리에 그의 사후 300년 쯤 세운 작은 교회 터가 있다. 사도 바울의 감옥이라고 도 하는 유적 등을 보러 사람들이 온다. 내 묵은 파리 호텔(Paris Hotel)에서 2백 여m에 요한 기념 예배당(St. John's Basilica)에 갔는데, 문은 닫히고 나 혼자 작은 뜰의 벤치에 앉아 그가 그 예전에 예까지 왔다니 참 놀라운 생각에 잠겼다. 그저 말만 전해오더라도 그 의미야 순례 객에게 달려있으니까.

두기고(Thychicus)가 들고 온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가 신약 성서에 있어 나는 다시 그 옛 수신자들이 살았던 이 에베소 땅에서 이 수난 주간에 에베소서를 새롭게 읽으니 실감에 감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령한 경륜으로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의 관계처럼 유기적이라고 설명한 바울의 구조적 이해가 깊었고, 두기고가 이를 가지고 에베소의 항구에 도착하여 지금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의 성도들에게 반갑게 전한 사실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나는 에베소 유적 맞은 편 산 허리에 홀로 올라가 앉아서 건너다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 교인들이 모이던 집이 어디 쯤이었을가? 고대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는 아르테미스 신전 문처럼 보이는 해골 같은 대리석 구조가 저기 서있으니 그 화려했고 방탕했던 저 옆이야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서 사도 요한이 예수의 모친을 멀찌감치 20여 리 이상 떨어진 곳에 작은 집을 마련했을까?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의 하나로 알려진 화려했지만 허망하게 무너져버렸으니.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지을 때 온갖 자재를 다 모으면서 여기 저 아르테미스의 고대 건축물까지 헐어다 대리석 기둥과 석재를 사용했다고 도 하니 말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순결한 부부처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지키며, 의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진리의 띠를 띠고 성령의 검을 들고 악한 날에 대적하기 위해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으라고 이들에게 권고했음을 생각해본다, 세월을 아끼라면서.

역사를 생각하면 AD 431년 소위 ‘에베소 회의(The Coucil of Ephesus)’인 초기 기독교의 감독들의 제3차 회의가 바로 에베소 교회에서 회집 되었던 데가 아닌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의 동 로마제국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cius II)가 우리가 지금도 외우는 사도신경(the Nicene Creed)이 채택된 니케아회의 때의 그 신조를 당시 세계 기독교가 다시 재확인하기 위해 소집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일찍이 경교(景敎)라고 번역한 네스토리안 파의 시작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여기 옛날 에베소 항구 가까이의 마리아 교회(Church of Mary)에서 역시 모였을 때 마리아는 ‘하나님을 출생한 자(Theotokos/ Birth-Giver of God)’ 곧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라 선포하므로 로마 가톨릭과 네스토리안이 갈라지는 시발점이었다. 그래서 에베소의 마리아 교회는 두 개의 중요한 교회 회의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라서 더구나 동방 교회인 콘스탄티노플 정교회가 중요시하여 그 마리아 교회의 정면 일부의 기둥들을 지금까지 그 무너진 에베소의 유적 속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사도 요한의 계시에서 에베소 교회는 꿋꿋이 만난(萬難)를 견뎠다고 칭찬을 받았다. 요한이 생애 최후의 때에 여기 에베소에서 보냈다며 로마 천주 교회가 공식 인정 하므로 3명의 교황들이 여길 방문 했으니, 1967년 바오로 6세(Paul VI), 1976년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 2006년 베네딕트 16세(Benedict XVI)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