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요한과 바울을 회상하며 / 에베소에서 II

요한과 바울을 회상하며 / 에베소에서 II

지중해의 그리스와 터키 사이를 에게 해(The Aegean Sea)라 하는데, 긴 역사를 지닌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거기 터키의 서쪽 바닷가 에베소는 일찍이 번창한 고대 도시였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 중의 서머나와 에베소가 머잖은 거리의 두 번창한 항구 도시가 그때의 현상이었다. 옛 서머나Smyrna)가 지금은 이즈미르(Izmir)라는 큰 도시로 불리면서 다시 크고 번화한 도회(都會)다, 가까이 작은 지금의 셀추크(Selcuk)가 바로 유명했던 옛 에베소였다.

나는 이틀에 걸쳐 요한계시록에 사도 요한의 계시에 언급된 서머나 교회와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는 금년의 수난 주간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을 맞이했다. 물론 그렇게 타이밍을 맞춘 것이지만 이로서 2천 년 전 다락방에서 있었던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앉았던 요한을 많이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 이에 성급한 베드로가 감히 직접 그 사실에 관해 묻지 못하고 예수가 더 사랑한 나이 어린 요한에게 고개 짓으로 주께 여쭈라고 사인을 보냈고, 이에 요한이 예수의 가슴에 의지한 채로 여쭈었다, “주여, 누구 오니까?” 이 사실을 요한이 요한복음에 기록해 넣었기(요13:25) 까닭이다. 실로 제자들 가운데서도 이는 대단한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날. 또 요한은 여기 에베소에서 머잖은 밧모 섬에 유배를 가서 아나톨리아 소아시아의 7교회에 대해 훗날 계시를 받았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했다. 거기 서머나와 에베소 교회에 대한 부분을 다시 본다, 지금 여기 서머나와 에베소의 그 옛터에서.

그 흥청대던 에베소였는데, 지금은 단지 관광객들의 유적지로 남아 있을 뿐이니 옛 이야기를 파헤치며 관찰하려는 이들의 쓸쓸한 관광지일 뿐이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기 오래 전부터도 그리스 사람들이 거기 엄청난 규모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세웠고, 바울이 갔을 때도 그 위용과 사람들의 그 신상 숭배가 대단했음을 사도행전(19장)에서까지 엿볼 수가 있지만, 지금은 다 무너지고 그 터전의 돌들로 화한 유적만 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믿겨지지 않는 감회가 아닌가!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코로나 전에는 많이 오면서 성지순례처럼 이곳까지도 많이 오므로 안내인들이 몇 마디의 한국말까지 동원하는 걸 보면서 바울은 알지도 못했던 한국 기독교인들이 예까지 영향력이 파급될 줄을 일찍이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옛날이 잦아진 돌무더기 오랜 유적 속에는 그 화려했던 건축물이 로마식의 목욕탕 문화의 퇴패한 흔적이며, 귀족과 평민을 갈랐던 구역과 호화롭던 생활을 상상으로 그릴 수 있는 유허지(遺虛地)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Antonius)와 연인이 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가 예까지 지나가면서 목욕하고 쇼핑하며 머물렀다고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발하기까지 한다. 번쩍거렸을 대리석으로 지었다는 당시 3대 도서관은 지식의 첨단이 아니었으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도서관, 버가모(Phergamo) 도서관, 그리고 여기 셀수스(Selsus) 도서관이었다니까. 원형 야외극장은 2만 명이 넘는 수용의 거대함을 3천 년 전에 만든 인간의 야망과 온갖 욕망의 꽃을 피웠을 에베소가 은허(殷墟)의 옛 터전을 보고 읊었던 동양의 시(詩)를 연상케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옛날과 함께 다 바람 속으로 사라졌으니! BC 620년에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었던 그리스의 문화도, 웅장하게 뒤이은 로마의 문명도, 후대의 아랍인의 침략과 마침내 15세기 오토만 제국의 영향 아래 이제껏 터키로 내려오면서 지금은 에베소라 아니 하고 아랍의 셀추크(Selcuk)로 새로 세운 아주 작은 도시이다.

그토록 번창했던 에베소가 지금의 셀축으로 변해오면서 아데미 신앙이나 기독교의 전통도 지금의 회교도들에 묻혀 박물관과 고대 유적으로만 줄어든 관광지는 도보로 이어질 만큼 축소 되졌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의미 있는 순례 행진이 된다. 3천 년 전 희랍인들이 이주해서 저 아르테미스 신전 둘레에 모여 살았다네. 이야기하길 좋아했을 그들을 상상해보라, 아름다운 지중해의 기후 아래 동서의 교량처럼 이 에베소를 통하여 문물이 교환되고 온갖 문화가 모여들던 무역항이었던 사실을 말이다. 실상 에베소는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하나가 처음 건립했다고 하고 로마가 지배하면서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바울 시대까지 만도 소아시아의 수도와 같았던 에베소는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디옥과 함께 세계적 4대 도시였으니까. 당시 사도 바울이 전도하러 왔을 때에는 유태인 공동체가 꽤 자리를 잡았던 듯, 거기 얽힌 에피소드가 성서에 전하고 있다. 에게 해의 연안에 번화했다는 에베소는 기나긴 세월에 토사(土砂)가 쌓여 항구가 불편해졌고 그때도 유행했던 전염병 등으로 퇴화해버린 도시 중의 하나이다. 크리스천의 순례는 초대교회의 바울과 그의 조력자였던 누가, 마지막에 예수가 어머니를 부탁했던 사도 요한과 성모 마리아 때문이다. 요한은 스승의 위임을 받고서 필시 마리아를 돌보았고 여기 에베소까지 함께 와서 돌보았다고 전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의 무덤까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바울은 사도행전에 분명하게 에베소와 깊은 관련이 있었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고 믿는 누가는 바울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다가 여기 에베소까지 왔다는 것이다. 요한은 물론 여기서 소아시아에 영향을 미치며 선교하다가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하기도 했으며 다시 에베소에 와서 만년을 지낸 것 같다 해서 사도요한의 교회까지 유적이 있을 정도니까.

'지인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 Paul's Pamphilya / 선교 여정을 지나며  (0) 2022.04.16
길동무 / Little Samaritan  (0) 2022.04.15
에베소에서 / Ephesus at Seluck  (0) 2022.04.13
내변산 산행  (0) 2022.04.13
亂邦不居/ 터키의 러시아인들  (0)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