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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Seize the day / 花無十日紅

Seize the day/ 花無十日紅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 카르페 디엄(Carpe Diem)은 라틴어로, 고대 희랍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Epicurus)가 말한 것으로 '순간을 즐기라,' 오늘을 즐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비슷한 발음으로 영어의 카르페 디엠(Carpe DM) 곧 카르페 DM(Direct Message)으로 변용하여 ‘하루를 즐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DM의 약자가 쪽지라는 말로 줄여서 썼던 때문이다. 이에 더 나아가서 더러 는 그걸 또 밤을 잡아라, 곧 밤에 충실 해라는 뜻으로 비약 하여서 밤을 잡아라(Seize the Night)라고도 했으니, 낮에 충실하게 살았으면 여가의 삶인 밤 시간도 즐겁고 좋은 시간으로 만들라는 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곱고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시구(詩句)인데, 서양의 그 카르페 디엠과 똑같은 맥락이 아닌가?

이는 다 인간의 시간적 한계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머잖아 이 생을 다 끝내야 하기에, 그 끝이 오기 전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고 더 늦기 전에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자기 훈령(訓令)인 것이다. 엄벙덤벙 세월이 흘러가고 기나긴 종말의 밤이 닥칠 때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라도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생계(生計)를 위하여 우리가 젊어서는 공부하는 데 온갖 시간과 정열을 다 쏟아 붓고, 학업을 마치면 다시 일터에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하니까. 정작 그 말을 많이 듣고 기억은 하더라도 실상 그렇게 오늘을 기쁘게 사는 건 흔히 들 미루고 유보해 두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공부하고 돈 벌고, 가정 꾸리며 자녀 기르다 보면 나 자신의 시간이 너무 모자라 오늘을 충만이 즐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자식들 다 짝 지어 놓고 이젠 우리 부부(夫婦) 오붓이 즐기려 했는데, 친지(親知) 하나가 별안간 암 진단을 받고 그 꿈에 금이 갔다고 아쉬워했다. 미국의 소위 엠티 네스터들(empty nesters)이 자주 하는 하소연도 그렇다. 아이들 키워 대학 보내고 났을 때를 영어로 ‘빈 둥지의 부모’ 라니까. 자녀들의 짐을 내려놓고 둘 만의 시간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까지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바쁘고 대학을 준비하느라 온갖 노력에는 예능이다, 운동이다, 봉사 활동이다, 차를 태워다 줘야 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부모에게는 쉴 틈도 없다. 그러다가 다 대학으로 가고 나면 이제는 자유로워지는 빈 둥지의 삶을 즐기려고 한다. 새로 스키를 사서 부부 둘만이 마음 놓고 눈 비탈을 즐기고, 가고 싶은 꿈 여행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아, 변고(變故)가 오다니! 우리가 늘 외던 화무실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게 바로 에피큐리오스의 카르테 디엄(carte diem),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는 뜻이라고 서양이 외던 말과 같으니까. 봄 저무는 낙화(落花)에 우리 부모들이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이요, 달도 차며 는 기우나니[日月盈昃/ 일월영측]!” 옛 글을 안타깝게 노래하시던 소리 저절로 나도 외웠지만, 그땐 그 뜻도 몰랐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니 카르테 디엠(Carete diem)! “붉은 꽃도 열흘을 채 못 넘기 나니, 오늘의 기쁨을 포착하라.”